무대에서 한 맺힌 소리를 토해내던 '송화'는 실제로는 차분하고 조리있게 말도 잘 했다. 문화계의 젊은 프런티어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자람(31). 요즘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창작 뮤지컬 '서편제'(조광화 극본, 이지나 연출)의 주인공 송화를 맡아 열연 중이다.
알려진대로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로 시작하는 동요 '내 이름(예솔아!)'(1984)의 주인공이다. 진부한 느낌이 들어 꺼낼까말까 하다가 했더니 "하도 들었더니 초월했다. 이젠 예솔이가 남 같다"며 웃어 넘긴다.
이자람 앞에는 수식어가 많다. 공식적으로는 펑크록을 추구하는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리드보컬이고, 그외에 국악신동, 신세대 소리꾼, 전방위 예술인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다양한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 그래서 상식적인 틀로 쉽게 담을 수 없는 무엇이 있다는 뜻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표현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냥 '노래하는 이자람'이란다.
"'노래하다'란 말에는 가창력 외에도 가사를 쓰고, 사유하고, 창조하는 등의 의미가 다 포함돼 있다고 생각해요. 콘서트에서 제 소개할 때 항상 '노래하는 이자람입니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노래는 그녀에게 의미를 담는 그릇이다. "밴드에서 부르는 노래의 가사 , 그리고 판소리로 치면 사설이 중요하지요. 물론 노래도 잘 해야 하지만요. 이야기에 얼마나 진심을 담느냐가 관객의 감동으로 직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자람은 지난 7월 직접 작창을 하고 노랫말을 붙인 창작판소리 '사천가'로 주목받았다.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의 착한 사람'이 모티브다. 스물여덟살 때,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란 고민을 했고, '사회구조 때문이 아닐까'란 답을 얻어 판소리로 풀어냈다.
판소리라는 수단을 갖고 창작에 도전한 것은 참신한 시도였다.
"춘향가 심청가 등 흔히 알고 있는 판소리 다섯마당 밖에도 무궁무진한 판소리의 세계가 있어요. 이렇게 훌륭한 전통 장르가 있는데 왜 지금 이야기를 담지 않을까가 늘 불만이었어요. 판소리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지요."
뮤지컬 '서편제' 출연 역시 판소리가 매개가 됐다. "송화를 한국전통예술의 아이콘으로 만들어보자. 당신이 하려는 판소리 작업을 위해서도 '서편제'는 필요하다"란 이지나 연출의 '꼬드김'에 바로 넘어갔다.
"솔직히 뮤지컬은 잘 몰랐다"고 털어놓은 그녀는 "내가 모르던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어 보람을 느낀다"며 "우리가 그동안 버려둔 판소리가 조금이라도 매력있게 전해진다면 성공"이라고 덧붙였다.
뮤지컬 '서편제'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와 스토리라인은 비슷하다. 예술적 광기에 휩싸인 아버지 유봉 때문에 눈이 먼 송화. 그런 아버지가 싫어 곁을 떠난 동생 동호. '서편제'의 압권은 마지막 피날레 신이다. 세월이 흘러 머리에 서리가 내린 뒤 재회한 동호가 치는 북장단에 맞춰 송화가 '심청가'의 부녀상봉 대목을 절절히 토해내면 객석 여기저기서 눈물샘이 터진다. "우리가 결국 이렇게 만났구나, 니 북에 소리를 하니 너무 기쁘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노래를 해온 것 같다 등의 독백이 마음 속에 흘러요. 그 심정을 담아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이자람은 내년 5월 '사천가'에 이은 두번째 창작 판소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작은 진실들이 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라고 해 고개를 갸웃했더니 "단거리싸움에선 비주얼 좋은 배우가 이길 수 있지만 긴 싸움에서는 진심을 담은 배우가 이겼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란다. '흠~'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을 하자 "제가 좀 애늙은이같죠?"라며 웃는다.
이자람은 쉽게 규정할 수 없는 하나의 스타일이다. 그래서 더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는 길을 걷고 있는 듯 했다. 그녀의 향후 행보가 관심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