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장구한 여정… 우리는 어디쯤에 있나

입력 : 2010.09.21 03:05

2010 부산비엔날레
과거 비추는 거울·시간 품은 돌… 인류의 역사와 미래, 손에 잡힐 듯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2동 부산시립미술관에 들어설 때 출입문 위에 설치된 침팬지 조각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게 된다. 출입문 위에 앉은 침팬지 조각이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알래스테어 맥키의 작품 〈모방의 미래〉로 반성 없이 앞만 보고 질주하는 현대인을 조롱하는 '인류의 조상'을 형상화했다.

올해 6회를 맞이한 '2010 부산비엔날레'의 주제는 '진화 속의 삶'으로 알래스테어 맥키의 조각 작품이 전시의 도입부를 담당하고 있다. '2010 부산비엔날레'의 아주마야 다카시 총감독은 "정보혁명이 기술 혁신뿐 아니라 인류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도 진화를 가져오고 있다"면서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변화와 그에 따라 달라진 우리의 행동이 역사와 미래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살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2010 부산비엔날레’에 전시 중인 클로드 레베크의 설치작품〈찬가〉.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 작가로 참여했던 레베크는 40여개의‘창’이 관람객을 겨냥한 이 작품을 통해 위협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부산비엔날레 제공
‘2010 부산비엔날레’에 전시 중인 클로드 레베크의 설치작품〈찬가〉.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 작가로 참여했던 레베크는 40여개의‘창’이 관람객을 겨냥한 이 작품을 통해 위협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부산비엔날레 제공
이번 전시는 좁은 의미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진화를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뿐 아니라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상상의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다. 차기율의 대형 설치작품 〈순환의 여행〉은 거대한 포도 넝쿨과 넝쿨 사이를 통과하는 돌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짚어본다. 작가는 "여기 있는 돌이 45억년 전에 생겨났다면 그동안 돌이 거쳐온 여정은 대단하다"며 "긴 여정을 통과한 돌에서 신성함마저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지구의 역사만큼 오래된 돌을 통해 우리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클로드 레베크의 설치작품 〈찬가〉는 거울로 둘러싸인 방 위에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날카로운 '창' 40여개가 달려 있다. 창은 관람객에게 금방 떨어질 것같이 위협적이다. 작품 속 거울은 과거의 기억을 상징하는데, 날카로운 창은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차기율의 설치작품〈순환의 여행〉. /부산비엔날레 제공
차기율의 설치작품〈순환의 여행〉. /부산비엔날레 제공
이번 전시에 출품된 회화 작품들은 진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진 메이어슨의 회화 작품은 기술 발달이 가져올지 모르는 우울한 미래를 그린 듯하고, 올리버 크렉의 작품은 19세기에 쓰였던 나무 위에 그림을 그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함을 보여준다. 빌 비올라의 비디오 작품 〈투영하는 연못〉은 물에 뛰어드는 사람의 움직임은 순간 정지되는데 수면의 움직임은 계속돼 두 개의 시간대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작가들은 진화와 함께 진행된 인간의 문명 발달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그중 하나가 이샤이 가르바즈의 홀로코스트를 다룬 사진 작품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서〉로 인간이 저지른 학살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한다. 과연 인간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갖게 한다.

알래스테어 맥키의〈무정형 유기체〉. /부산비엔날레 제공
알래스테어 맥키의〈무정형 유기체〉. /부산비엔날레 제공
인류의 진화를 떠올리고 온 관람객이라면 자독 벤 데이비드의 대형 설치 작품 〈진화와 이론〉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지구를 상징하는 모래 위에 설치된 작품으로 인류의 진화 단계를 형상화했다. 진화하는 인류의 모습을 얇은 철판으로 세워 입체적으로 보여주면서 인류가 발명한 기기를 함께 등장시켰다. 전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호모 사피엔스에서 진화한 인류의 장구한 역사가 손에 잡힐 듯하다.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과 요트경기장, 광안리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전시장으로 변한 요트경기장 계측실은 미술관과 분위기가 달라 흥미롭다. 광안리해수욕장에는 대형 조각 작품들이 전시돼 야외 전시의 묘미를 살렸다.

이번 전시는 작품 하나하나와 그 작품을 관람하는 관람객이 진화라는 거대한 시간 속에서 만나고 반응하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전시는 11월 20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과 요트경기장에서 열리며, 광안리해수욕장에 설치된 작품은 10월 1일까지 전시된다. 입장료 4000~7000원. (051) 503-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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