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걱정 잠시 잊고 모두 "브라보!"

입력 : 2010.09.13 03:06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 서울대학 치과병원 환자 위해 무료 콘서트

환자 이순영(가명·45·경기도 남양주시)씨는 구강암 환자다. 입속 염증이 낫질 않아 고민하다 병원에 갔더니 암(癌)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씨가 말했다. "수술을 앞두고 무척 무서웠다. 잠시라도 걱정을 잊고 싶었다. 마침 병원에서 음악회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일부러 나왔다. 음악을 듣다 보면 두려움도 잠시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씨 같은 환자들이 모여 있는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8일 낮 12시 로비 1층에서 조선일보와 스톰프뮤직이 함께하는 '찾아가는 무료 콘서트―나눔 프로젝트'가 열렸다. 음악회 주인공은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35). 1996년 한국인 최초로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 우승, 1998년 '에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상' 수상, 2006년 데뷔 앨범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로 미국 빌보드 클래식 차트 9위에 오른 최정상급 연주자다.

김수빈이 활을 움직이자 바이올린이 높은 음색으로 흐느꼈다. 음색이 가늘고 길어질수록 환자들은 숨을 죽였다. 의사들도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김수빈이 활을 움직이자 바이올린이 높은 음색으로 흐느꼈다. 음색이 가늘고 길어질수록 환자들은 숨을 죽였다. 의사들도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시작 전부터 로비는 환자들로 가득 찼다. 턱에 붕대를 감은 환자, 입에 거즈를 문 환자도 있었다. 구강암·안면기형·안면골 골절·구순구개열 기형 등으로 병원에 찾아온 사람들이다. 환자 유은명(가명·50·서울 서초구 서초동)씨는 붕대를 두른 탓에 입을 열지 못하고 수첩에 이렇게 적어 보였다. "바이올린 소리 들으면 덜 아플 것 같네요." 그렇게 연주가 시작됐다.

첫 곡은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르톡의 '루마니안 댄스'. 활이 움직이자 바이올린이 숨 가쁘게 흐느꼈다. 사람들 흩어지는 소리, 누군가 이름을 길게 부르는 소리, 휠체어 굴러가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던 병원 로비. 하지만 바이올린 소리가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발소리도 작아졌다. 헛기침하던 사람도 호흡을 멈췄다. 두 번째 곡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1번'이 잇달아 울려 퍼지자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달콤하면서도 익숙한 멜로디, 흥겹고 열정적인 바이올린 음색이 마지막으로 가늘게 떨리자 "브라보!" 소리가 쏟아졌다.

물결 치는 박수. 예상치 못한 호응에 김수빈이 환하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계속 들려 드릴게요." 세 번째 곡은 브람스의 '헝가리무곡 제5번'. 그리고 에스파냐 바이올린 연주·작곡가로 유명한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 더 사람이 모여들었고, 좁은 로비는 인파로 가득 찼다. 가운을 입은 의사도, 마스크를 쓴 환자도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활이 마지막으로 바이올린을 떠난 뒤 짧은 정적. 그리고 빗소리보다 큰 박수 소리가 밀려들었다. "앙코르!"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도 들렸다. 김수빈은 계속되는 박수에 다시 한 번 무대에 섰다. 조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앙코르 곡은 드뷔시의 '봉주르'입니다."

짧지만 달콤한 음악. 공연이 모두 끝나자 환자 이순영씨는 "나처럼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가슴이 떨리고 목이 뜨거워지는 연주였다. 잠시나마 덕분에 참 행복했다"고 젖은 눈가를 훔쳤다. 곽형규(67)씨는 "이렇게 시끄러운 병원 로비에서 끝까지 흔들림 없이 음악을 들려준 연주자에게 감동했다"며 "나도 오늘 하루 더 열심히 살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수빈은 오는 10월 1일 서울 금호아트홀에서도 집시의 열정을 연주하는 리사이틀 '패션(Passion)'을 연다.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측은 "기대 이상으로 감동적인 무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찾아가는 무료 콘서트'는 10월에도 계속된다. 문의 (02)2658-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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