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중국 공주, 자금성으로 '금의환향' 하기까지

입력 : 2010.08.19 03:05

[클래식 ABC] 오페라 '투란도트'

오페라 '투란도트'는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Puccini·1858~1924)의 미완성 유작입니다. 후두암을 앓고 있던 푸치니는 칼라프 왕자를 연모하는 시녀인 류가 애절한 아리아를 부르는 3막 중반까지 쓰고서 결국 펜을 놓았지요. 3막의 마지막 이중창을 비롯해 스케치로 남아 있던 미완성 대목은 작곡가 프랑코 알파노가 물려받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1926년 푸치니의 절친한 동료였던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이 작품의 초연을 맡았을 때, 토스카니니는 3막 류의 비극적 죽음에서 지휘봉을 놓은 뒤 관객을 향해 돌아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오페라는 끝납니다. 푸치니 선생이 여기까지 작곡했기 때문입니다." 토스카니니는 다시는 이 작품을 연주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푸치니의 오페라‘투란도트’가운데 중국 대신인 핑·팡·퐁. /예술의전당 제공
푸치니의 오페라‘투란도트’가운데 중국 대신인 핑·팡·퐁. /예술의전당 제공
차가운 얼음장처럼 닫혀 있던 투란도트 공주의 마음을 칼라프 왕자가 사랑으로 연다는 낭만적 내용 때문에 이 오페라는 초연 이후 세계 전역에서 고루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작품의 배경으로 나오는 중국에서는 사정이 달랐지요. 잔혹하게 남자들의 목숨을 빼앗는 투란도트 공주를 비롯해 전체주의적 지배에 시달리는 군중까지 온통 중국에 대한 부정적 묘사로 가득하다는 이유로 이 작품은 한동안 중국에서 보기 어려웠습니다.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과 마찬가지로, '투란도트' 역시 서양의 열강이 아시아의 개항을 강요하던 시절의 작품이기에 동양적 시선에서는 다소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금기의 오페라'는 1998년 주빈 메타가 지휘하고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연출을 맡았던 베이징 자금성(紫禁城) 공연을 통해 중국에서 화려하게 복권됐습니다. "베이징 사람들아. 포고문을 들어라. 투란도트 공주께서 세 가지 수수께끼를 푼 자의 신부가 되신다. 그러나 풀지 못할 때에는 죽음을 당하리라"는 1막의 첫 장면부터 베이징 한복판에서 역사가 그대로 재현되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킵니다. 한국에서도 '투란도트'는 대규모 야외공연에 어울리는 오페라로 받아들여지게 됐지요.

하지만 21세기에 들면서 서양에서도 '투란도트'에 깔려 있는 오리엔탈리즘은 자성(自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2002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영국의 연출가 데이비드 폰트니는 기계화로 인해 인간성 상실의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로 '투란도트'의 배경을 과감하게 옮겼습니다. 투란도트 공주는 극 중반까지 지상에 발을 내려놓지 않는 비인간적 존재이며, 중국의 관리 핑·팡·퐁도 가위 손을 장착한 기계로 설정했습니다. 이런 도전과 재해석을 통해 과거의 고전은 오늘날 우리의 문제로 되살아납니다.

▶가족 오페라 '투란도트',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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