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깊은 單色… 그 숭고한 해방감

입력 : 2010.08.17 03:20

'모노크롬의 대가' 정창섭展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정창섭전(展)은 한국의 모노크롬(단색주의)을 이끌어온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이다.

1927년 청주에서 태어난 정창섭 화백은 서울대 미대 회화과 1회 입학과 첫 졸업생으로, 한국에서 정식으로 미술대학 교육을 받은 1세대였다. 작가의 1950년대 초반 작품인 〈백자〉에서는 서구 입체파의 영향을, 〈심문〉에서는 6·25 전쟁 이후 한국을 휩쓸었던 혼란과 폭력에 대한 표현주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정창섭의〈귀 77-O〉(1977).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정창섭의〈귀 77-O〉(1977).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외국의 영향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국 고유의 미를 파고들던 정 화백이 금맥을 발견한 것은 한지(韓紙)였다. 정 화백은 서양화 전공이었지만 유화가 주는 끈끈함에 정착하지 못하다 1970년대 한지를 통해 작품에 대한 답을 얻었다. 어릴 적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화사한 햇빛을 보면서 미감(美感)을 키웠던 기억을 되살린 것이다.

닥을 풀어 닥죽을 만든 뒤 이를 캔버스에 손으로 펴 발라 색을 내고 형태를 만들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하듯 즉흥적으로 보이지만 작가는 모눈종이로 닥죽을 바를 높낮이를 계산해 캔버스에 옮겼다. 작품 이름도 아예 〈닥〉이라고 붙여 닥이 주는 물성(物性)을 즐기고 하나가 되고자 했다.

화려함과 지나침을 배제한 단색(單色)이 주는 깊이와 엄격함, 해방감이 볼수록 시선을 잡아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국립현대미술관 이순령 학예사는 "정창섭 화백의 대형 작품이 걸린 전시장에 서 있으면 러시아 출신 미국 화가 로스코의 작품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숭고한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작가는 한 가지 중심의 색을 사용해 당시 국내 화단의 큰 흐름이었던 단색주의의 주축이 됐다. '단색주의'는 이미지를 배제하고 한 가지 색이나 같은 계열의 색조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말한다. 1970년대 정 화백은 박서보·하종현 화백 등과 단색주의를 주도했지만 세계 미술사에 '한국의 단색주의'라는 미술사적 의미를 확고하게 하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국내 미술계는 이번 전시가 정창섭 개인의 회고전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한국 단색주의에 대한 재조명의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전시는 10월 17일까지 이어진다. 입장료 1500~ 3000원. (02)2188-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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