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지휘자' 교체 선수들 "정명훈 다음은 나야 나"

입력 : 2010.06.30 23:34

성시연·최수열·이영칠… 세계 악단 누비며 경력 쌓아 국내 무대엔 구자범·이병욱…
연공서열 강한 국내 음악계 스타발굴 인색… 세대교체 느려

세계 음악계에서 20~30대 젊은 지휘자들이 명문 오케스트라의 수장(首長)으로 잇달아 취임하면서 거센 돌풍을 일으키고 〈본지 6월 24일자 A23면 참조〉 있지만, 국내 음악계는 아직 서울시향 지휘자 정명훈을 최전방 공격수로 내세운 '원톱(one top) 시스템' 에 가깝다. '정명훈 이후'를 꿈꾸는 차세대 지휘자들은 많지만, 아직 이들을 충분히 활용할만한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이 과제로 꼽힌다.

"내가 포스트 정명훈"

세계 유수의 악단이나 국내 오케스트라에서 지휘하면서 경험을 쌓고 있는 후보군(群)은 폭넓고 다양하다. 지난 2006년 게오르그 솔티 지휘 콩쿠르 1위와 2007년 말러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입상하고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서울시향의 부지휘자를 맡고 있는 성시연(35)이 대표적이다. 웬만한 남성들 못지않게 선이 굵고 박력 있는 지휘 동작으로 쇼스타코비치와 바르토크 등 20세기 초반의 관현악에 강점을 보이며, 말러 교향곡에도 욕심을 낸다.

‘정명훈 이후’를 꿈꾸는 차세대 지휘자들.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영칠, 정민, 성시연, 구자범, 장한나, 이병욱씨.
‘정명훈 이후’를 꿈꾸는 차세대 지휘자들.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영칠, 정민, 성시연, 구자범, 장한나, 이병욱씨.
독일 하노버 오페라 극장에서 활동한 뒤 지난해 광주시향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구자범(40) 역시 지난 5월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등 굵직한 연주회를 통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연세대 철학과 졸업 후 독일로 건너갔으며, 오페라와 발레 등 현장 경험이 풍부하고 뜻 맞는 악단을 만났을 때 관현악 효과를 극대화한다.

통영국제음악제(TIMF)의 상주악단인 팀프 앙상블의 수석 지휘자 이병욱(35)은 '살로메' '마술피리' 등 국내에서 오페라 지휘로 이름을 알렸다. 지휘자 최수열(31)은 지난달 독일 현대음악 전문 단체인 앙상블 모데른의 오디션에 합격해 1년간 부지휘자로 활동할 예정이다. 최씨는 드레스덴 국립음대에서 수학 중이며 국내에서는 일본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의 수록곡들을 연주한 '칸타빌레 콘서트'의 지휘자로 친숙하다. 지휘자 이영칠(40)은 체코 소피아 필하모닉 등 동유럽에서 경력을 쌓고 있으며, 7월 11일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의 협연으로 일본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첼리스트 장한나(28)는 매년 성남아트센터와 함께 클래식 프로그램인 '앱솔루트 클래식'에서 지휘를 맡고 있으며, 오는 8월 20일과 28일 브람스의 교향곡 1·4번을 지휘한다. 정명훈의 셋째 아들인 정민(26)도 7월 10~18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라벨의 오페라 '어린이와 마법'을 지휘한다.

"스타 발굴 시스템을 만들어라"

하지만 해외의 젊은 지휘자들이 음악감독이나 상임지휘자까지 거침없이 진출하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뚜렷한 '세대교체' 흐름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수석 객원지휘자나 부지휘자 제도가 활발하게 운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부지휘자를 둔 곳은 서울시향, 인천시향, 원주시향, 부산시향, 대전시향, 창원시향 등 일부에 불과하다.

연공서열 풍토가 강한 국내 음악계가 젊은 지휘자 발굴에 인색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얼마든지 독주(獨奏)와 독창(獨唱)이 가능한 기악이나 성악과 달리,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통해서만 기량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칼럼니스트 유정우씨는 "국내 오케스트라는 공연 횟수가 적은데다 청중도 연륜과 경험이 풍부한 지휘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젊은 지휘자들이 수련을 쌓거나 두각을 나타낼 기회가 많지 않다"며 "새 지휘자를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는 기초 시스템부터 다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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