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6.07 13:58
피터 브룩 연출의 '11 그리고 12'
연극은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관점이나 해석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분명 관객과 함께 호흡해야 하는 연극의 핵심적 요소임에 틀림없다. 또 다른 욕망은 논쟁이다. 작품이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나 소재 또는 그 양식과 연극적 상상력이 동시대를 투영해볼 수 있는 이야기로 현존할 수 있느냐는 것, 즉 ‘문제적 controversy’인 작품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예술이 담을 수 있는 시대정신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예술가의 사명이기도 하다. 연출가 피터 브룩에게 이러한 보편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파생되는 논쟁은 흩어지지 않는 힘으로 지속되어왔다. 게다가 교묘하게도 세상 어디에 갖다 놓아도 ‘말이 되는’ 다양한 여지를 작품 속에 남겨놓는 저력을 갖고 있다.
피터 브룩 연출의 '11 그리고 12'는 2009년 11월 프랑스 뷔페 뒤 노르에서 초연된 그의 최근작을 직접 목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끄는 작품으로, 아프리카 전통 수피 종교에서 일어난 비극적 참극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제목만으로는 작품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숫자 ‘11’과 ‘12’. 그것은 아프리카의 이슬람 수피 종교 내에서 기도문을 암송하는 숫자를 의미한다. 라이벌 관계에 있던 두 종파가 있다. 어떤 종파는 기도문을 열한 번 외워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종파는 열두 번을 외워야 한다고 믿는다. 이 한 번의 차이에서 비롯된 반목과 대립은 부족 간의 걷잡을 수 없는 폭력으로 이어진다.
피터 브룩 연출의 '11 그리고 12'는 2009년 11월 프랑스 뷔페 뒤 노르에서 초연된 그의 최근작을 직접 목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끄는 작품으로, 아프리카 전통 수피 종교에서 일어난 비극적 참극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제목만으로는 작품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숫자 ‘11’과 ‘12’. 그것은 아프리카의 이슬람 수피 종교 내에서 기도문을 암송하는 숫자를 의미한다. 라이벌 관계에 있던 두 종파가 있다. 어떤 종파는 기도문을 열한 번 외워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종파는 열두 번을 외워야 한다고 믿는다. 이 한 번의 차이에서 비롯된 반목과 대립은 부족 간의 걷잡을 수 없는 폭력으로 이어진다.
일면 종교적 분쟁으로 여겨질 수 있는 논쟁이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1930년대 초 프랑스의 식민지 아래 있던 아프리카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 그것은 프랑스 정부에 반항적이었던 하말리스트를 순종케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종교적 논쟁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두 종파의 지도자인 보카와 하말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야기되는 두 종파의 증오를 가라앉히기 위해 종교적 갈등을 넘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화합과 평화를 추구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이데올로기는 끝내 두 지도자의 희생을 강요하고 만다.
이처럼 피터 브룩의 '11 그리고 12'는 숫자 하나의 차이에서 비롯된 아프리카 수피 종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정치, 종교, 사상을 뛰어넘어 화합과 관용을 이어가고자 했던 두 지도자의 삶을 비견해 세상의 대립과 폭력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목도하게 한다. 11과 12 사이의 ‘그리고’는 이미 그 차이를 넘어서고 있는 언어와도 같다. 열한 번이나 열두 번이라는 한 가지의 아집을 벗어나 ‘양쪽’ 모두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피터 브룩의 '11 그리고 12'는 숫자 하나의 차이에서 비롯된 아프리카 수피 종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정치, 종교, 사상을 뛰어넘어 화합과 관용을 이어가고자 했던 두 지도자의 삶을 비견해 세상의 대립과 폭력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목도하게 한다. 11과 12 사이의 ‘그리고’는 이미 그 차이를 넘어서고 있는 언어와도 같다. 열한 번이나 열두 번이라는 한 가지의 아집을 벗어나 ‘양쪽’ 모두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 시대의 화두는 단연코 ‘소통’이다. 익숙하기에 더없이 진부한 이 단어를 계속 꺼낼 수밖에 없는 불통(不通)의 시대가 양산하고 있는 폭력과 대립의 현재를 곱씹어본다면 분명 이 작품은 1930년대 발생했던 역사 속 하나의 사건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연출가 피터 브룩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작품은 늘 당대의 사회상을 담는다.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