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피아노 두 대가 마주보고… 손가락 마흔 개가 춤추고

입력 : 2010.05.27 03:10

호암아트홀 25주년 갈라 콘서트
네 명이 마주앉아 연주… 4중창 부르는듯, 원로·중견연주자 한데 모인 '피아노 파티'

무대 위에 홀로 서야 하는 피아노는 본디 고독한 악기다.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원로·중견 피아니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호암아트홀 개관 25주년을 기념하는 25일 갈라 콘서트에 선 피아니스트 한동일·신수정·이경숙·김영호·최희연이 주인공이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D.899와 D.935의 3번을 연주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온 피아니스트 한동일은 13세 때인 1954년 미 공군기를 타고 유학을 떠났던 한국의 '음악 신동(神童) 1호'다. 반세기가 흐른 뒤 왼손으로 잔잔한 물결을 빚어내면서 오른손으로 유려하게 선율을 읊는 그의 슈베르트에는 일절 과장이나 가식이 없었다. 후반부 변주는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피아니스트 김영호(왼쪽)와 한동일이 마주 보고 앉아 연주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피아니스트 김영호(왼쪽)와 한동일이 마주 보고 앉아 연주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2007~2008년 서울대 음대 학장과 연세대 음대 학장으로 나란히 재직했던 피아니스트 신수정과 이경숙은 피아노 한 대에 나란히 앉아서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을 함께 연주했다. 2부에서는 피아니스트 김영호와 한동일이 피아노 두 대에 마주 보고 앉아 브람스의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억세고 투박하면서도 남성적으로 연주했다. 바흐처럼 차분하고 묵직한 3~4변주가 특히 빼어났다. 피아노 한 대에 두 피아니스트가 앉으면 '포 핸즈(4 hands)'나 '연탄(連彈)'으로 부르고, 두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두 대를 각각 연주할 때는 '투 피아노(2 pianos)'라고 부른다.

이날 음악회에서는 피아노로 만들 수 있는 실내악 편성을 모두 펼쳐보였다. 마지막 곡인 생상스의 '여덟 손을 위한 〈동양의 공주〉 서곡'에서는 이경숙과 신수정, 김영호와 최희연이 피아노 2대에 각각 나눠 앉아 함께 연주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신수정과 김영호가 저음을 맡고, 이경숙과 최희연이 고음을 맡아 마치 4중창을 함께 부르는 듯한 재미를 선보였다. 동시에 임동민·동혁 형제와 손열음·김선욱·조성진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한국 피아노의 저력이 어디서부터 비롯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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