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톱스타 김혜수, 옻칠작가 전용복 만난 이유는?

입력 : 2010.05.15 03:05   |   수정 : 2010.06.03 14:24

"옻의 마력에 푹 빠졌어요"작년부터 師弟관계 맺어

화장기 없는 얼굴에 선글라스와 재킷 하나 걸친 여자가 나타났다. 주변이 갑자기 술렁였다. 영화배우 김혜수(40)였다. 이 여배우, 갑자기 한 남자와 포옹했다. "어이, 혜수!" "선생님, 일찍 왔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김혜수와 칠예가(漆藝家) 전용복이 만났다. 지난 11일 전용복의 전시회 '만년(萬年)의 빛'이 열리고 있는 서울 조선일보미술관에서다. 전용복은 일본에서 활동하던 세계적인 옻칠작가다. 그럼 둘의 관계는?

김혜수는“선생님 같
은 예인을 알게 된 나
는 운이 좋은 여자”
라고 했다. 오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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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복은“워낙에 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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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빨랐다”고 했다 박종인 기자
김혜수는“선생님 같 은 예인을 알게 된 나 는 운이 좋은 여자” 라고 했다. 오랜만에 재회한 제자에게 전 용복은“워낙에 자질 이 뛰어난 친구라 이 해가 빨랐다”고 했다 박종인 기자
김혜수는 전용복의 제자다. 작년 5월 김혜수는 일본 이와테현 모리오카시에 있는 전용복의 미술관을 찾았다. 유네스코와 한 케이블방송이 공동기획한 예술 프로그램이 둘을 이어줬다.

거기서 여배우는 옻칠에 푹 빠졌다. 이미 그림에 탐닉해 화가로 데뷔한 경력이 있는 그였다. 스승은 톱배우라고 봐주지 않았다. 제자 또한 옻 오를 두려움도 없이 맨손으로 옻을 주물러가며 작품을 만들었다.

5월 한 달 동안 전용복의 귀향(歸鄕) 기념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이 작가가 제자를 초대했다. 작년에 일본에서 김혜수가 만든 작품을 그녀에게 주고 김혜수는 스승의 전시회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선생님, 기억나세요? 옻이 그리 비싼 줄 모르고 제가 유화 물감처럼 옻을 막 처발랐잖아요? 나중에 선생님 아드님 현민이가 선생님께 그랬다면서요? '아빠, 혜수 누나가 옻을 물쓰듯….' 정말 내가 뭘 몰랐죠, 죄송해요."

김혜수는 전용복과 함께 작업복 사러 간 기억, 고무줄로 머리를 상투처럼 묶고 옻 작업을 했던 일을 떠올렸다. "옻이라는 전통 재료가 이렇게 현대적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스승은 "워낙 자질이 있어 옻에 대한 이해가 빨랐다"고 했다. 김혜수는 "평소 털털하던 분이 작업에 들어가면 무섭게 집중하더라"며 "그 예술적 광기(狂氣)에 감동해 함께 갔던 촬영팀이 울어버린 적도 있었다"고 했다.

스승이 제자에게 작품을 건넸다. 채도 낮은 적(赤)과 청(靑)으로 구성한 추상 작품이다. 배우이자 화가, 초보 칠예가인 김혜수는 몸둘 바를 몰라했다. "이거 다 선생님이 손봐주신 건데…." 김혜수가 스승의 작품세계를 말했다.

"전통과 현대성이 공존한다. 대담하고 섬세하고 강렬하고 서정적이다." 두 사람이 대형 작품 앞에 섰다. 제목은 회귀(回歸). 본향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홀연히 일본 활동을 털고 귀향한 전용복의 마음이 담긴 작품이다.

전용복은 바로크가구 후원으로 인천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김혜수가 반색했다. "선생님, 저도 거기서 작업할 수 있나요?"

전용복은 1991년 세계 최대 규모의 옻칠 예술품인 도쿄 메구로가조엔(目黑雅�C園)을 복원한 한국인이다.

일본인이 경복궁을 복원한 격이다. 이후 전용복은 일본 최대의 옻칠미술관을 개원하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5억원대 옻칠 시계를 만들었다. 일본 언론은 그에게 '세계 최고의 칠예가 한국인 전용복'이라는 칭호를 붙여줬다. 그런 전용복이 20여년 일본 활동을 털어버리고 영구 귀국했다.

'옻장이'라는 천시를 받고 떠났던 나라였다. 제자 김혜수는 최근 소속사에서 독립했다. 6월에는 '이층의 악당'이라는 블랙코미디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도 20년을 하면 그 방면의 달인(達人)이 되지 않을까? 나도 선생님처럼 한 분야에 매진하고 싶다." 이 호탕한 여배우는 '결혼'이야기를 이메일로 묻자 비로소 여성 본색을 드러냈다. '패스(Pass·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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