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클럽도 뚫는 '도전 정신'

입력 : 2010.05.12 23:30

세계 정상급 '에머슨 현악 4중주단' 6년만에 내한

지난 3월 독일 베를린의 필하모니 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둥지로도 쓰이는 이 연주회장의 소극장에서 음악회를 마친 에머슨 현악 4중주단은 곧장 나이트클럽으로 찾아갔다. 어두침침한 조명의 클럽에는 600여명의 젊은 청중이 모여있었고, 디스크자키(DJ)는 크게 외쳤다. "여러분, 에머슨 현악 4중주단입니다!"

나이트클럽 한복판에서 환호를 받는 현악 4중주단은 어쩐지 낯설어 보인다. 하지만 이 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유진 드러커(Drucker)는 전화 인터뷰에서 "대중음악의 위력이 갈수록 거세지는 지금, 클래식 연주자들은 어쩌면 존재 자체를 인정받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youtube)와 인맥 쌓기 서비스인 페이스북(facebook) 같은 인터넷은 물론, 나이트클럽과 재즈 클럽 등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곳으로 적극 찾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존의 음악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뉴욕을 근거로 활동하는 이들은 지난달 맨해튼의 재즈 클럽인 '붉은 물고기(Le Poisson Rouge)'에서 연주했다. 드러커는 "클래식 연주회장에서 클럽으로 옮기면 대곡(大曲)만 아니라 소품(小品)도 준비하고 중간중간 해설도 넣는 등 연주 방식 자체가 변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필립 세처(바이올린), 로렌스 더튼(비올라), 유진 드러커(바이올린), 데이비드 핀켈(첼로). /LG아트센터 제공
왼쪽부터 필립 세처(바이올린), 로렌스 더튼(비올라), 유진 드러커(바이올린), 데이비드 핀켈(첼로). /LG아트센터 제공
다음 달 6년 만에 내한공연을 갖는 에머슨 현악 4중주단은 세계 정상의 실내악단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도전을 불사하지 않는 자세로도 정평이 나 있다. 실제 1976년 창단 직후부터 그랬다. 헝가리 작곡가 바르토크의 탄생 100주년이었던 1981년에는 2차례 휴식 시간을 포함해 3시간 40분 동안 현악 4중주 전곡(6곡)을 하룻저녁에 완주하는 '마라톤 콘서트'를 벌였다. 드러커는 "처음엔 청중이 끝까지 남아 있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 90% 정도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며 웃었다. 이후에도 이들은 2001년까지 4~5차례 더 전곡(全曲)을 완주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다행히 모차르트와 드보르자크, 쇼스타코비치의 실내악으로 2시간 안팎의 '하프 마라톤'만 펼친다.

보통 현악 4중주단은 앉아서 연주하지만, 이들은 창단 25주년 기념 시즌이었던 2002년 첼리스트를 제외한 세 명의 연주자가 모두 일어서서 연주하는 '이색 음악회'를 선보이기도 했다. 드러커는 "청중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리허설에는 마지막 10분 전까지 앉아서 연습하고 중간 휴식 시간에도 틈틈이 쉬면서 체력을 아꼈다"고 했다.

1976년 미국 건국 200주년을 맞아 결성한 이들은 1979년 첼리스트 데이비드 핀켈이 합류한 뒤부터는 멤버 교체 없이 30여년간 활동하고 있다. 부부나 가족도 다투게 마련인데, 30년간 '찰떡궁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얼까.

"장기간 공연을 다니다 보면 불편함이나 갈등은 언제든 생기게 마련이에요. 후배 실내악단에도 '첫 5년이 가장 중요하다. 서로의 차이를 용납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조언해요. 힘들 때에도 반드시 잃어선 안 되는 게 '유머 감각'이지요."

드러커는 "일정 수준에 오르면 새롭게 도전하기보다는 그저 유지하거나 안주하는데 급급하기 쉽다. 음악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도전 정신을 놓치는 순간 매너리즘이나 고정관념에 빠지고 만다"고 말했다. 그는 실내악단이 아니라 흡사 부부나 가족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했다. 드러커는 "그래서 현악 4중주단을 '4가지 방식의 결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며 웃었다.

▶에머슨 현악 4중주단 내한공연, 6월 6일 오후 7시 서울 LG아트센터,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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