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고지순 그 사랑, 둘 다 반해버렸죠"

입력 : 2010.05.06 03:02   |   수정 : 2010.05.06 05:56

같은 오페라 '오르페오…' 다른 무대에 올리는 장수동·이소영
그녀는 예술의전당에… "저승까지 쫓아간 애절함 한국적 시각으로 풀어내"
그는 소극장에서… "새벽의 서울 지하철이 배경 신화적 세계, 일상과 섞어"

같은 작곡가의 같은 오페라, 다른 무대의 다른 시각….

이달 독일 작곡가 글루크(Gluck·1714~1787)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가 서울 예술의전당과 마포아트센터에서 맞대결을 펼친다.

소극장 오페라 운동을 펼치고 있는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이 이 작품을 갖고 7일부터 마포아트센터를 찾는 데 이어,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이소영)은 16일부터 같은 작품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올린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며 저승을 찾아가는 그리스 신화 속 지고지순(至高至順)한 사랑의 이야기를 새삼 오늘로 불러내는 이유는 무얼까.

이소영과 장수동, 두 오페라 연출가를 한 자리에 모아 궁금한 것을 물었다.

푸치니의 오페라《토스카》공연 도중 타악기가 울리지 않는 바람에 당황한 연출가가 입으로 총성을 내기도 했고, 총성이 여러 차례 울리는 바람에 남자 주인공이 수없이 총에 맞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오페라 연출가 이소영(왼쪽)과 장수동이 만나자 공연 도중 겪었던 실수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푸치니의 오페라《토스카》공연 도중 타악기가 울리지 않는 바람에 당황한 연출가가 입으로 총성을 내기도 했고, 총성이 여러 차례 울리는 바람에 남자 주인공이 수없이 총에 맞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오페라 연출가 이소영(왼쪽)과 장수동이 만나자 공연 도중 겪었던 실수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글루크의 오페라를 고른 이유는.

이소영=바로크 시대의 오페라는 성악가의 기교에 치중하는 바람에 드라마가 빠지고 말았다. 음악과 극(劇)의 일체를 끌어낸 첫 작곡가 세대가 바로 글루크다.

장수동=그런 의미에서 글루크는 고전오페라의 효시(嚆矢)라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이 적기 때문에 소규모와 적은 비용으로도 공연할 수 있는 소극장 오페라 운동에 걸맞은 작품이기도 하다.

―같은 작품을 골랐지만, 연출상 출발점은 다소 다르다.

=한국의 전통적 상복(喪服)을 입은 무리가 죽은 아내를 애통해하는 장례의식에서 출발한다. 흙과 나무, 물과 불 같은 동양적 시각을 통해 죽음과 그리움, 희망과 절망 같은 근원적 문제를 되짚어보고 싶었다.

=나는 거꾸로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의 서울 지하철을 무대로 택했다. 신화적 세계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설정에서 출발했다. 실제 서울 지하철 1호선을 타면 철로에도 손수건과 하이힐, 핸드백이 떨어져 있는 걸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 장면에서 신부의 면사포와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국립오페라단 제공
―만혼(晩婚)과 저출산, 이혼과 독신이 만연한 오늘날에도 이토록 애절한 사랑이 가능한가.

=아내 에우리디체를 잃은 오르페오의 슬픔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극한의 고통을 상징한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죽음과 같은 상실감만이 남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감동을 줄 수 있는 너무나 인간적인 오페라이다.

=오르페오는 저승까지 찾아갔지만 정작 에우리디체는 여전히 그의 사랑을 의심하며 남편에게 따져 묻는다. 1000번을 사랑해도 1번을 다투면 갈라설 수 있는 것처럼, 한계에 부딪히고 다시 극복해가는 사랑의 과정은 지금도 유효하다.

―오페라처럼 격렬한 절망에 시달린 적이 있는가.

=물론이다. 다음 날 햇살과 바람, 공기가 무의미할 만큼 하향곡선을 겪거나 주변의 도움 자체를 멀리한 적도 있다. 하지만 차분히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자기 자신과 화해할 때만이 다시 꿈을 그리고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독립영화를 촬영하는 것과 같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12년간 제작과 연출을 같이 맡아서 소극장 오페라 운동을 해 온 것 자체가 때로는 처절한 고통이었다.(웃음)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7~9일 마포아트센터, (02)3274-8600

▶국립오페라단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16~20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586-5282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다른 연출로 다른 무대에 올리는 국립오페라단 이소영 예술감독과 서울오페라앙상블 장수동 예술감독이 4일 예술의 전당에서 만나 서로의 오페라관을 펼쳘다. /이진한 기자 magnum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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