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석·김소현 없는 '오페라의 유령', 상상불가

입력 : 2010.04.26 11:33
윤영석·김소현, 오페라의 유령
윤영석·김소현,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캣츠’ 등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손꼽히는 ‘오페라의 유령’이 국내 뮤지컬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지난해 9월23일 막을 올린 ‘오페라의 유령’은 6개월 만인 이달 10일 공연에서 관객 24만명을 돌파, 자체 기록을 넘어섰다. 작품별 누적 기록이 아닌 단일 시즌 공연으로는 최다관객 기록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2001년 국내 초연 당시 7개월간 24만 명을 모으며 최다관객 기록을 세운 바 있다. 공연제작사인 설앤컴퍼니는 7월 말까지 공연이 계속될 예정이어서 국내 최초로 단일 공연 30만 관객을 기대하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이 이토록 잘 팔리는 배경에는 ‘팬텀’ 윤영석(39), ‘크리스틴’ 김소현(33)이 있다. 2001년 초연 무대에도 올랐던 이들은 ‘오페라의 유령’을 통해 뮤지컬에 발을 디뎠고 스타덤에 올랐다. 각각 300회와 200회이상 무대에 오르고 있는 두 남녀를 빼고 ‘오페라의 유령’을 이야기할 수 없다. ‘오페라의 유령’을 빼놓고 윤영석과 김소현을 이야기할 수도 없다.

윤영석은 “2001년 첫 공연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웃었다. “오페라가수가 꿈이던, 오페라만 하는 사람이라 정신이 없었다”며 “오페라의유령이 국내 초연이라 언론의 관심도 집중돼 심적으로 부담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2002년 6월 마지막 공연을 끝낸 뒤에 너무 아쉬웠는데 이번 시즌은 초연 때 표현해보지 못한 것들을 내보이려고 노력했다.” 김소현은 “내 인생을 바꿔놓은 작품”이라고 눈을 반짝였다. “8년 만에 공연을 하게 됐는데 두려움도 설렘도 컸다”며 “첫 시즌 때는 무조건 열심히만 했는데 이번에는 큰 책임감까지 느꼈다”고 밝혔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한회 한회 소중하게 임하고 있다.”

2001년과 2008년 무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윤영석은 “예전에는 나무만 봤다면 이번에는 숲까지 보려”고 했다. “처음에는 연출부에서 시키는 것만 했는데 이제는 팬텀 인물 자체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다”며 “팬텀이 어떻게 자라왔는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확실히 예전보다 캐릭터를 대하는 것이 깊어진 것 같다.”

김소현 역시 윤영석과 느끼는 것이 비슷하다. “당시 사회경험이 처음이었고 나이도 어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키는 것만 했다”며 “이제 경험이 쌓이다보니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 자체에 신경을 쓰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첫 시즌에 내가 연기하는 크리스틴은 무조건 여리고 예쁘기만 했는데 이제는 내면의 깊은 곳까지 드러내게 되더라.”

등장 시간은 길지 않지만 팬텀을 분장하려면 오래 걸린다. 윤영석은 “팬텀을 위해서는 무려 2시간30분 동안 분장을 해야 한다”며 “예전에는 공연 도중 힘들어서 넋 놓고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제는 아니다. “무대에 서지 않는 시간에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대 뒤편에 있는 동안에도 모니터를 통해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보고 있다”며 “내 안에 있는 극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항상 긴장하고 있다”는 프로페셔널이다.

윤영석에게 ‘오페라의 유령’은 절대자나 다름없다. “한 동안은 윤영석을 소개할 때 앞에 팬텀이 꼭 붙어다녔다”며 “처음에는 너무 버겁고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아닌 일종의 훈장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오히려 다른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여유로워졌다”면서 “하나의 껍질을 깬 것은 같은 느낌이 든다”고 표현했다. “팬텀은 내게 시작이자 끝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에 굉장히 행복하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2회 공연이 있는 어느 주말에 저녁 공연을 맡았지만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며 “와중에 낮 공연을 맡았던 배우가 사정이 생겨 40분 만에 분장을 마치고 2막에 투입됐던 적”을 꼽았다. “황당하기는 했지만 색다른 경험이라 인상에 남는다”고 껄껄댔다. 앞으로 “팬텀을 통해 성장을 거듭했으니 지금껏 맡지 않았던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서 TV든 영화든 도전하고 싶다”고 바랐다.

김소연에게 ‘오페라의 유령’은 일종의 운명이다. “2001년 오디션을 볼 당시 대단한 공연인 줄도 모르고” 있었지만 “이를 통해 뮤지컬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소현 역시 크리스틴이란 거대한 수식어에 붙들린 고정된 이미지가 부담스러웠다. “그 동안 크리스틴의 이미지를 깨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8년 만에 다시 ‘오페라의 유령’ 무대에 서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고 까르르 웃는다. “특유의 세트 냄새가 너무 좋았다”며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참 감사한 작품이라 운명처럼 느껴진다”며 경건하기까지 하다.

공연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최근에 벌어졌다. “크리스틴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서 팬텀의 은신처로 끌려가는 장면이 있었다. 사고가 정말 드문데 그날 공연에서는 중간에 배가 멈춰버렸다”는 것이다. “클라이맥스 바로 직전인 중요한 장면이라 너무 당황스러웠다”며 “내가 도망치는 것처럼 그냥 뛰어서 호수를 건너가 버렸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오히려 그런 일이 생기니까 긴장감이 생겨서 더욱 집중하게 되더라”면서 “항상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나 더 배웠다.

김소현은 “뮤지컬 말고 다른 장르에도 몇 번 외도를 했었다”며 “지금은 내가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성악을 전공한 만큼 “10월에 크로스오버 위주로 팝페라 음반도 내놓을 예정”이다.

윤영석에게 김소현은 “주고받는 것이 어떠한 배우보다 편한 배우”다. “자기 것만 열심히 하는 배우가 있는 반면 함께 나눌 수 있는 배우도 있는데 김소현은 후자”라며 “같이 배울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어 참 좋은 파트너”라고 칭찬했다. “8년 만에 팬텀과 크리스틴으로 호흡을 맞추는 첫날에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너무 잘 맞아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 깔깔댔다”며 흡족해했다.

김소현은 윤영석이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 “윤영석이 팬텀에 빙의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는 경지다. 또 “상대방의 컨디션까지 생각하며 연기를 맞춰주는 배려가 몸에 밴 배우”라고 소개했다. “100과 100이 만나서 50이 나올 수 있는데 윤영석과 함께 연기하면 100과 100이 만나 500이 나온다”며 만족 또 만족이다.

지방 공연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오페라의 유령’ 서울 공연은 일단 7월31일로 막을 내린다. 윤영석은 “장기 공연에 꾸준히 관객들이 찾아준 것에 감사한다”며 “항상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팬텀으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소현은 “무대에 설 때마다 화려함과 소중함을 동시에 느끼지만 관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면서 “남은 기간 더 열심히 할 테니 아직 보지 못한 분들이 많이 와줬으면 좋겠다”고 원했다.

다음 시즌에는 이들을 만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오면 정말 감사하겠지만 후배가 팬텀을 연기하면 관객들이 색다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단, 후배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당한 각오를 해야 할 텐데 그런 부분을 승화시키면 팬텀의 아픔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윤영석)

“후배들이 팬텀과 크리스틴을 맡더라도 팬텀은 윤영석, 크리스틴은 김소현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호호호.”(김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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