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신 다한 첫 무대… '연극의 神'이 씩 웃었다

입력 : 2010.04.22 02:38   |   수정 : 2010.04.22 05:28

연극 '토너먼트' 초연하는 날 告祀~커튼콜… 숨막힌 4시간
"이 무대는 지난 3개월이며… 청춘의 조각입니다"
뜨거운 祝文 삼형제의 꿈과 좌절 그린 명연기… 웃음과 눈물·폭발과 침묵 굽이쳐

지난 20일 오후 6시 서울 LG아트센터. 분장실 앞 복도는 움직이며 목청을 가다듬거나 허공을 향해 중얼거리는 배우들로 분주했다. 극단 죽도록달린다의 연극 '토너먼트' 초연을 두 시간 앞둔 풍경이다. 연출가 서재형은 "이제 내 손을 떠났다"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고, 극작가 한아름은 "마음엔 왜 굳은살이 안 박이는지…"라며 안절부절못했다.

6시 35분, 무대 위로 출연진과 스태프들, 극장 관계자들이 모였다. 텅 빈 객석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고사상이 올라왔다. 떡·전·북어·과일과 함께 연출대본, 슬리퍼, 광나게 닦은 구두, 펜싱칼 등이 놓였다. 돼지저금통이 가운데를 차지했고, 휠체어도 상 옆에 붙였다. "눈이 똑바로 박히고 꼬리도 잘 생긴 놈이라야 연극의 시작과 끝이 좋다"(한아름)는 말대로 북어는 상등품이었다.

분위기는 숙연했다. 배우 조한철이 막걸리를 올리고 축문(祝文)을 읽었다.

연극‘토너먼트’에 출연하는 배우 조한철이 공연 시작 직전 고사상 앞에서 축문을 읽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연극‘토너먼트’에 출연하는 배우 조한철이 공연 시작 직전 고사상 앞에서 축문을 읽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유세차 2010년 4월 20일 LG아트센터에서 연극의 신께 머리 숙여 고합니다. 세상을 향해 눈뜬 아이의 울음이 그러하듯 우리도 힘차게 고해봅니다. 오늘 이 무대에 서기까지 얼마나 가족들의 애를 태우고 한숨짓게 했는지. 오늘의 무대는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이며 지난 3개월이며 청춘의 한 조각입니다 …."

7시. 분장실에서는 여전히 대사가 새어나왔다. 복도에서 마지막 연습에 들어간 배우도 있었다. 완벽주의일까 두려움일까. 모니터로 무대를 들여다보던 연출가는 "아직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한 배우가 지나갔다. "하우스(객석) 오픈 2분 전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드디어 8시, 무대에 조명이 켜졌다. 1980년대 중반 서울의 판자촌, 그리고 한 가족이 보인다. 삼형제 중 펜싱 국가대표를 지낸 장남 택기(민대식)는 이혼해 딸(김진아)과 부대끼고, 둘째 택진(조한철)은 등반사고로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하며, 막내 택현(오찬우)은 막연히 가수를 꿈꾼다. 택진의 아내 진경(이진희)이 운영하는 국숫집이 이 가족의 생계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이야기는 택현의 음반 때문에 가게가 날아가고 택현이 가출하면서 급전직하했다.

‘토너먼트’4막 택진(오른쪽·조한철)의 펜싱 장면.
‘토너먼트’4막 택진(오른쪽·조한철)의 펜싱 장면.
연극은 여름 장맛비로 열려 무더위를 지나 겨울 쪽으로 갔다. 매끄러워 집중이 잘 됐다. 삼형제의 좌절된 꿈과 결핍으로 불을 때는 드라마였다. 웃음과 눈물, 폭발과 침묵, 거칠게 때리는 말과 어루만지는 말로 굽이쳤다. 조한철은 응축된 에너지로 오래 기억될 연기를 빚어냈고 이진희·민대식 등의 호흡도 단단했다. 하지만 포장마차로 내몰린 가족이 단속반이 된 택현과 마주친다는 설정은 상투적이었다.

엔딩은 올해의 명장면으로 꼽힐 만큼 강력했다. 택진은 상상 속에서 두 다리로 일어섰다. 회전무대는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았고, 펜싱칼을 쥔 택진은 전후좌우로 뛰며 상대와 대결했다. 챙챙챙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잠에서 깬 맥박 같았다. 꿈속에서 정상에 오른 택진은 약속대로 아내 이름을 불렀다. "진경아! 진경아!"

10시 5분, 연극은 끝났다. 커튼콜 무대에 선 배우들은 조금 더 밝아 보였다. 각자의 짐을 내려놓고 이야기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토너먼트'는 25일까지 LG아트센터. (02) 2005-0114
연극 '토너먼트'의 고사. 배우 조한철이 축문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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