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꼬이고 박자 놓치고' 명연기는 없었지만… 장애인 배우 28명, 가슴을 울리다

입력 : 2010.04.19 03:02

뮤지컬 공연 울산 장애인… 두 차례 뜨거운 커튼콜

주인공인 신라 충신 박제상 역을 맡은 신승훈(40·지체장애)씨는 혼신을 다해 결의를 노래했다. 신하가 되라고 강요하는 왜왕(倭王)에 맞서 차라리 목숨을 던지겠다는 결연함을 담은 곡이다. 객석이 숨을 죽였다.

"장부가 두 임금을 섬길 순 없겠지. 기어코 죽어야 신라로 가겠지…. 떨쳐뿌자 이 아픔을. 신라를 바꿀 단 한 사람. 박제상아. 네가 나를 이겨야 나라가 산데이…."

분위기는 장엄했지만 주인공 목소리는 갈라지고, 발음도 어눌했다. 지나치게 감정에 몰입한 듯 간혹 스포트라이트 조명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이윽고 피날레. 박제상의 대형 초상화가 서서히 무대 배경으로 내려왔다. 이어 모든 출연자가 차례로 무대로 나오며 '충신 박제상'을 합창했다. 노래가 끝나자 관객들의 갈채가 쏟아졌다. 박수는 끊어지는가 싶다가도 환호와 함께 이어지길 반복했다. 커튼콜도 두 차례 계속됐다. 28명의 장애인 배우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거듭 머리 숙여 감사했다.


 

모두 무대에 올라 마지막 합창곡을 부르는 28명의 장애인 배우들. 공연 중 이들은 박자를 놓치거나 대사가 꼬이는 등 자주 애를 먹었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서 박수갈채와 커튼콜이 이어졌다. / 김원규 인턴기자·울산대 철학과 4년
모두 무대에 올라 마지막 합창곡을 부르는 28명의 장애인 배우들. 공연 중 이들은 박자를 놓치거나 대사가 꼬이는 등 자주 애를 먹었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서 박수갈채와 커튼콜이 이어졌다. / 김원규 인턴기자·울산대 철학과 4년
지난 16일 오후 5시와 7시 30분 두 차례 울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무대에 오른 장애인 뮤지컬 '충신 박제상'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울산의 장애인 28명이 전 배역을 맡은 뮤지컬이다. 시각(5명)·지체(5명)·지적(5명)·청각(13명)장애인이 참여했다.

장애인 배우들은 종종 박자를 놓치거나 대사가 꼬여 애를 먹었다. 두 달 전 처음 모여 일주일에 세 차례 연습한 것만으론 충분치 않았던 모양이다.

소품인 두루마리 서신을 계속 들고 있어야 했던 고구려 사신(송진우씨·지적장애)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버텼고, 주인공 아내인 아로부인(정수야씨·시각장애) 곁에는 코러스 담당 청각장애 학생들이 붙어 다니며 동선을 안내해줘야 했다. 하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극본과 연출을 맡은 극작가 장창호(50) 감독은 "장애를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 있게 연기하자고 약속했는데, 모두들 잘 이겨내고 훌륭하게 소화해주었다"고 했다.

이날 객석은 1·2회 모두 600여석이 가득 찼다. 2회 공연에는 입장 못한 150여명이 대기실에서 모니터로 관람했다. 관객 전해선(55)씨는 "모두가 안간힘을 다해 대사와 노래를 이어가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며 몇 번이나 가슴 뭉클했다"고 했다. "다른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해도 좋을 것 같다"고 격려한 관객도 많았다.

이번 공연은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울산의 극단인 동그라미극장(대표 김보헌)이 제작했다. 올해까지 4년째 장애인 기획공연이다. 2007년 연극 '미운오리', 2008년 창작 뮤지컬 '바위에 새긴 사랑', 작년은 오페라 '투란도트'였다. 울산시와 울산장애인총연합회가 지원해왔고, 관람은 무료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