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이규현의 그림산책]불황기에 뜬다는 그 미술은?

입력 : 2010.04.17 07:44   |   수정 : 2010.04.17 21:15
지금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MA)에서 가장 화제인 전시는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퍼포먼스 아티스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64)의 '예술가는 여기 있다(The Artist is Present)'다.

아브라모비치는 퍼포먼스 아트의 창시자다. 모마 전시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건 그의 새 작품이다. 작가가 미술관에서 가장 넓은 2층 홀 한가운데 테이블을 놓고 앉아 있으면 관객이 한명씩 나와 맞은편에 앉는 게 작품의 전부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뉴욕 모마에서 하는 퍼포먼스 아트의 한 장면. 작가(오른쪽)와 관객이
종일 테이블에 마주 앉아 명상을 하는 게 작품의 전부다.모마 제공
관객은 자기 원하는 시간만큼 가만히 앉아서 작가와 마주 보며 명상한다. 이게 미술작품인가 싶지만 관객이 적극적으로 작품 제작과 감상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퍼포먼스 아트다. 작가가 전시기간(3월 14일~5월 31일) 내내 종일 앉아 있기 때문에 작품의 길이는 700시간 정도다.

젊은 작가들의 퍼포먼스 아트도 눈에 띈다. 휘트니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아키 사사모토(30)라는 일본 작가는 일상용품을 망사에 넣어 전시장 천장에 줄줄이 걸어 놓고 그 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1월 31일부터 3월 10일까지 한 달여 동안 미술관 벽을 휑하니 비워 놓고 '등장인물' 몇명만 복도와 홀을 오가는 퍼포먼스를 했다. 런던 출신 작가 티노 세갈(34)의 작품인데 출연자들, 즉 미술관 안을 오가는 사람들이 관객에게 질문하고 토론을 하는 것이다.

이 퍼포먼스는 관객의 참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런 퍼포먼스는 다른 장소에서도 '공연'할 수 있도록 작품의 아이디어를 살 순 있지만 경매나 화랑에서 그림을 사 자기 집에 걸어 놓는 식의 '작품 소유'는 불가능하다.

퍼포먼스 아트는 1960년대에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백남준, 요셉 보이스·오노 요코·존 케이지 등이 이끌던 플럭서스 운동(장르를 넘나드는 전위적인 예술)의 요체가 퍼포먼스 아트였다.

1970년대에는 작가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던져서 하는 퍼포먼스 아트가 대유행했는데 이런 기괴한 미술이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이런 유행과 1970년대 초 오일쇼크로 인한 세계 경기 불황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퍼포먼스 아트는 특정 장소에서 특정한 시간에 작가와 관객이 교감하는 행위를 하고 끝난다. 그래서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기록으로 남을 뿐 작품 자체를 그대로 사고파는 것은 불가능한 미술이다.

이런 '비상업적인 미술'은 경기가 나쁠 때, 즉 미술시장이 불황일 때 오히려 돋보인다. 경기불황 덕에 1970년대에는 현대미술의 재미있는 경향이 쏟아졌다. 설치미술, 자연을 소재로 한 대지(大地)미술, 개념미술, 그라피티(벽화) 미술 같은 전위적인 경향이 이때 폭발적으로 나왔다.

비싼 값에 쉽게 매매가 되는 1960년대의 팝아트 같은 미술로는 더 이상 1970년대라는 역동적 시대를 반영할 수 없었다. 퍼포먼스 아트는 관객에게 현실도피적인 탈출을 경험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불경기에 더 어울리는 미술이다.

뉴욕에 기반을 둔 아트 컨설턴트 하이디 리는 "요즘은 퍼포먼스 아트의 르네상스 시대처럼 보인다. 시장거래가 불가능한 이런 미술이 뜨는 것은 몇 년 전 겪은 미술시장 붐에 뚜렷하게 대조되는 현상이다"고 했다.

불황이 예술의 발전에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미술 시장이 초호황이었던 2005~2007년에는 서울에서나 뉴욕에서나 "어느 전시, 어느 작가를 봐도 작품은 다 똑같다"는 비난도 잦았다.

그림이 그리는 대로 팔려나갈 때는 작가도 잘 팔리는 미술 위주로 만든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미술을 해도 잘 팔리지 않는 불황기에는 오히려 공공미술, 퍼포먼스 아트처럼 시장과 거리가 먼 미술이 더 각광받는다. 2010년 지금 퍼포먼스 아트가 다시 뉴욕의 미술계를 휩쓰는 것을 보면 지금의 가라앉은 경기, 미술시장 불황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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