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여전한 ‘그녀’의 매력

입력 : 2010.04.09 10:35

뮤지컬 '미스 사이공'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2006년 초연된 이후 4년 만에 다시 막을 올렸다. '오페라의 유령'등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품들이 재공연되는 주기에 비추어보면 꽤나 긴 재정비의 시간을 보낸 셈이다. 하지만 이 시간의 이유를 초연의 미흡함으로만 돌린다면 조금은 억울한 감이 있다. 작품의 유명세와 그에 비례하는 기대감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경우랄까.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미스 사이공'은 관객이 기대하는 장면이 무엇인지, 관객이 불편해하는 지점이 어디인지가 분명하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이 관객에게 성공적으로 다가가려면 관객의 기대치를 채우면서도 그 불편함은 최소한으로 희석시켜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2010년의 '미스 사이공'에서는 ‘할 수 있는 만큼’의 최대치를 위해 애쓴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초연 때 지적됐던 어색한 번역의 가사를 좀 더 자연스레 수정한 것이나 무대 조건에 맞지 않아 생략해버렸던 캐딜락 세트를 이번 공연에서는 제대로 등장시킨 것 등이 그 예다. 물론 실제 헬기가 등장한다는 전설적인 스펙터클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화면으로 재현된 헬기 장면이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겠지만, 그래도 3D 영상이 만들어내는 입체감은 배우들의 움직임과 잘 어우러져 나름의 완성도를 만들어낸다.

기술적인 부분의 진일보에 비해 변할 수 없는 이야기의 흐름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베트남 전쟁이라는 배경에 미군이 주인공이니만큼 선악의 구도로 보든 죄악과 책임의 문제로 보든 흑백의 결론은 명백한 터,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이야기는 어찌 보면 뻔뻔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미스 사이공'은 뮤지컬 아니던가. 뮤지컬을 지배하는 것은 리얼리즘이 아니라 판타지다.

여주인공 킴은 그런 판타지적 상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전쟁의 와중에 창녀촌에 흘러들어온 순수한 처녀라는 설정이 그렇다. 킴은 완전한 순결과 완전한 모성, 그리고 완전한 자기희생을 보여주는 완벽한 판타지의 인물이다. 물론 이런 자기희생은 역사의 산물이 아니라 판타지의 도구다. 판타지의 순수함은 끝까지 지켜져야 하는 법이니 크리스와 순수하게 맺어질 수 없다면 킴의 존재의 일관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멜로의 주인공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법이니 이 작품의 세계관에 그리 크게 마음이 상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역사적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면, 한국 배우들에 의한 한국 공연이라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검은 머리의 크리스와 존은 미국인으로 객관화되기보다는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를 연상케 한다. 베트남 전쟁의 이야기는 미국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이두이’가 있다면 ‘라이따이한’도 있지 않은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역사는 기억을 되살린다. 이야기의 불편함이 여기까지 와 닿는다면 그건 오히려 기꺼운 일이다.

하지만 '미스 사이공'이 주는 알짜배기 즐거움은 거의 전적으로 음악에 있다. '미스 사이공'의 음악은 서정성과 극적인 면에서, 또한 극에 개입하는 타이밍에서도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다. 2010년의 공연에서도 음악의 힘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오케스트라의 저력도 만만치 않지만 무엇보다 참여하는 배우들의 면면이 기대할 만하다. 특히 김보경의 보컬은 발군이다. 마이클 리, 이건명, 김성기 등 주인공뿐 아니라 김우형과 김선영 등의 실력파 배우들이 조연으로 포진한 이번 '미스 사이공'이야말로 귀가 호강하는 공연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게다.

코러스 장면이 다소 산만하지만 주연배우들의 집중력이 극의 흐름을 지탱하고,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묘사된 창녀촌 장면은 극의 무게감을 다소 가볍게 만들지만 음악의 멋스러움이 시각적 표현의 무절제함을 품위 있게 감싼다. 뮤지컬의 힘은 역시 음악에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미스 사이공'만 한 것이 있을까. 4월 성남아트센터의 무대에서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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