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랑연극상] "마당놀이 하며 외로웠는데… 적금 탄 기분"

입력 : 2010.03.25 03:05

제20회 이해랑연극상 배우 김성녀 인터뷰

"지난 연말에 마당놀이 '이춘풍 난봉기' 공연하다 팔이 부러졌어요. 올해가 백호띠, 60년 만에 돌아온 내 해인데 무슨 봉변인가 했지요. 이렇게 큰 행운을 가져다주려고 날 넘어뜨렸구나 싶습니다."

먼저 전화로 제20회 이해랑연극상 수상 소식을 전했을 때 배우 김성녀(중앙대 교수)의 반응은 "어머나 웬일이야. 반갑고 고맙고 기쁘네요"였다. 이어 지난 19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만난 그는 "잠깐 '어, 이 상이 왜 지금?'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적금(積金) 탄 기분"이라며 웃었다.

김성녀의 배우 인생은 천막극장에서 시작됐다. 여성국극 스타였던 박옥진(2004년 별세)의 딸이었던 그는 다섯 살부터 천막극장 무대에 올랐다. 의상 바구니에서 잠을 잤고 무대가 놀이터였다. 김성녀는 "유랑극단 시절 무대를 세우고 허무는 것을 보면서 메케한 극장 먼지를 먹고 자랐다"며 "엄마는 '예인(藝人)은 고생길이니 넌 절대 하지 마라. 선생님이 돼라'고 하셨는데 지금 둘 다 하는 셈"이라고 했다.

제20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로 선정된 배우 김성녀는“극장 먼지를 먹고 자라서인지 무대가 제일 편하다”며“변신이나 도전에 겁을 낸 적은 없고 완성도가 두려울 뿐”이라고 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제20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로 선정된 배우 김성녀는“극장 먼지를 먹고 자라서인지 무대가 제일 편하다”며“변신이나 도전에 겁을 낸 적은 없고 완성도가 두려울 뿐”이라고 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김성녀는 마당놀이로 널리 알려졌지만 '벽속의 요정' '남사당의 하늘' '죽음과 소녀' 같은 정극은 물론 뮤지컬·무용·창극 등 장르를 넘나드는 배우다. 스스로 '멀티 배우'라고 했다. "남자, 뺑덕어멈, 정경부인…. 비슷한 배역은 한 번도 없었어요. 어느 것 하나를 끝내주게 하는 것보다는 맡기면 뭐든 할 수 있는 변화무쌍, 그게 제가 추구하는 배우예요."

모노드라마 '벽속의 요정'은 김성녀가 그동안 지나온 배역들을 종합한 모자이크였다. 그는 소녀·건달·할머니 등 26개의 가면(배역)을 갈아 쓰며 50년을 가로질렀다. 그의 몸을 통해 무대에 명멸한 26개의 '헛것'은 저마다 존재감을 눌러 찍었다. 억양·표정·눈빛·호흡·자세·움직임에 끈질기게 매달리며 '없지만 있는' 등장인물들과 에너지를 주고받고 몸을 부대꼈다.

1976년 극단 민예의 연극 '한네의 승천'으로 데뷔한 김성녀는 1980년대 국립극단 소속으로 '삭풍의 계절' 등에서 연출가 이해랑과 함께 작업했다. 그에게 '이해랑'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호흡'이다. 김성녀는 "당신의 호흡과 배우들의 호흡이 일치할 때 좋은 연극이 나온다고 믿은 연출가"라면서 "쫑파티 때는 윤항기의 '이거야 정말'을 멋들어지게 부르셨다"고 했다.

김성녀는 2003년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연출가 손진책의 아내로, 부부 동반 수상은 처음이다. "무뚝뚝한 B형 남자인 남편이 수상 소식을 더 반겼다"고 했다. 이들은 딸 손지원도 배우인 연극 가족이다.

서양연극이라는 형식에 우리 전통의 가무(歌舞)를 담아온 김성녀는 "오랫동안 외로웠다"고 털어놓았다. 연극계에서 마당놀이를 '열외'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김성녀는 "'벽속의 요정'으로 김성녀를 재발견했다는 말을 들을 때 고마웠지만 섭섭하기도 했다"며 "50대 들어 연기에 자신감이 붙었으니 내 연극은 이제부터"라고 말했다. 김성녀는 진실된 마음, 바른 화술, 훈련된 몸을 연기의 3요소로 꼽았다. "동료 배우들로부터 인정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잠깐 등장하더라도 관록이 배어나는 배우가 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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