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3.24 23:22
특별상 받는 원로배우 장민호
이해랑연극상 특별상을 받는 원로배우 장민호는 "죄스럽고 염치없다"는 말부터 했다. "스승 같고 아버지 같았던 이해랑 선생님이 작고하신 뒤 그분을 위해 뭘 한 게 없다"는 미안함이다. 그는 "이해랑연극상이 20년 되는 기쁜 해라서 (상을) 받기로 했지만, 선생님 계신 동네(저승)에 가서 꾸지람이나 듣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황해도 신천 출신인 장민호는 1950년 10월 국립극단의 전신인 극단 신협(新協)에 입단했다. 배우이자 연출가였던 이해랑이 당시 신협을 이끌고 있었다. 장민호는 무대에 대한 이해랑의 고집과 열정·인품에 끌렸다고 한다. "동선(動線)을 다 그어놓고도 '불편하냐'고 일일이 물을 정도로 배우를 아낀 연출가"라는 것이다. 장민호는 이해랑으로부터 배운 '연기론'을 들려줬다.
"깊은 우물 속에 조약돌을 던졌을 때 '펑' 하며 울리는 소리, 흔히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소리,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소리를 내야 바람직한 배우다."
지난 18일 장민호를 만난 곳은 김수용 영화감독의 회고전이 열리는 한국영상자료원이었다. '남한산성' '한강은 흐른다' 등 200편의 연극에 출연했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도 기억되는 장민호는 "연극의 매력은 소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연극은 영화처럼 재생되지 않는다. 커튼콜 박수소리와 더불어 없어지지. 그래서 그 시간과 장소, 추억이 소중한 거다. '다시'도 NG도 없다. 어떻게 보면 허무하기 짝이 없지만 얼마나 엄숙하고 솔직한 예술행위인가?"
그의 별명은 '파우스트 장'이다. 이해랑이 연출에 참여했던 1964년 국내 초연부터 1997년 공연까지 4번이나 파우스트 역을 맡았다. 한 대목을 청하자 1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배우를 살아 있게 하는 명대사가 즉석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유감스럽게 신학까지도 속속들이 연구하였도다. 그러나 지금 여기 서 있는 난 가련한 바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만 알게 되었구나…."
지난 18일 장민호를 만난 곳은 김수용 영화감독의 회고전이 열리는 한국영상자료원이었다. '남한산성' '한강은 흐른다' 등 200편의 연극에 출연했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도 기억되는 장민호는 "연극의 매력은 소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연극은 영화처럼 재생되지 않는다. 커튼콜 박수소리와 더불어 없어지지. 그래서 그 시간과 장소, 추억이 소중한 거다. '다시'도 NG도 없다. 어떻게 보면 허무하기 짝이 없지만 얼마나 엄숙하고 솔직한 예술행위인가?"
그의 별명은 '파우스트 장'이다. 이해랑이 연출에 참여했던 1964년 국내 초연부터 1997년 공연까지 4번이나 파우스트 역을 맡았다. 한 대목을 청하자 1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배우를 살아 있게 하는 명대사가 즉석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유감스럽게 신학까지도 속속들이 연구하였도다. 그러나 지금 여기 서 있는 난 가련한 바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만 알게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