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일상공간 어디나 이들에겐 공연 무대

입력 : 2010.03.22 03:07   |   수정 : 2010.03.22 08:47

국내 유일의 공중퍼포먼스 극단 '경계없는 예술센터'
佛 거리극 축제보고 충격… 국내 최초 '거리극단' 구상
작년부터 공중 공연 선보여

지난 15일 오후 지상 4층 높이의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문래예술공장 외벽에 두 사람이 거미처럼 달라 붙어있었다. 암벽등반 장비를 착용하고 직경 10.5㎜ 줄에 온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Do like this(이렇게 해보세요)!" 옥상에서 줄에 매달린 이들을 바라보던 프랑스인 프란시스카(45)가 허공으로 팔을 뻗으며 발레 하듯 우아하게 손짓했다. 건물 외벽에 줄로 매달린 안의숙(28)씨가 어렵사리 동작을 따라 했다. 김현창(26)씨는 외줄에 의지하며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벽을 탔다. 흡사 '거미 인간' 모습이었다. "Good(굿)!" 프란시스카가 만족한 듯 외쳤다.

이들은 국내 최초 거리극 전문단체이자 유일한 공중퍼포먼스 극단 '경계없는 예술센터'의 배우들이다. 이날 연습은 프랑스의 유명 공중퍼포먼스 극단 레트로몽(Retouramont)과의 워크숍 프로그램이었다.

검은 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은 경계없는 예술센터 단원들이 지난 1월 2일 세종문화회관 외벽에 매달려 공연하고 있다. /경계없는 예술센터 제공
검은 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은 경계없는 예술센터 단원들이 지난 1월 2일 세종문화회관 외벽에 매달려 공연하고 있다. /경계없는 예술센터 제공
줄 하나에 온몸 매달고 공연

'경계없는 예술센터'는 2001년 상명대 연극학과 이화원·윤기훈 교수가 "형식과 틀의 경계가 없는 예술활동을 하자"는 취지로 만든 거리극단이다. 국내 최초로 거리에서 예술공연을 시작했고, 작년 여름부터는 공중 퍼포먼스도 선보이고 있다. 모두 17명이 활동하며, 그 중 6명이 공중 퍼포먼스를 한다.

극단은 1997년 이 교수가 프랑스 '오리악 거리극 축제'를 다녀오고 나서 처음 구상됐다. "일상공간을 공연 무대로 자유롭게 탈바꿈하는 프랑스 극단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럽고 충격적이었죠."

2001년 제자 12명과 지하철 4호선 혜화역 개찰구 앞에서 벌인 첫 거리극 공연은 시민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지하철 노선을 중심으로 기차가 일상생활의 배경인 '일상역'을 지나 자유가 넘치는 '예술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그렸다.

2006년 영등포구 문래동에 사무실을 차린 극단은 동네 곳곳에서 느닷없이 예술공연을 펼치는 '경계 없는 예술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철제공장이 모여있던 문래동에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거리극으로 꾸몄고, 광화문광장에서는 5명이 같은 복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복사된 일상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여의도에서는 거미 분장을 하고 다니는 '더 웹(web)'을 공연했다.

극단은 2008년 눈이 번쩍 뜨이는 공연을 발견했다. 줄 하나에 의지해 건물 외벽에 수직으로 매달린 채 공연하는 '버티컬(vertical) 댄스'다.

이듬해 한국에 공연차 들른 프랑스 공중퍼포먼스 단체 레트로몽에게 기본 기술을 배웠지만, 막상 연습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황성탁 극단 사무국장은 "영등포구 오목교 아래에 공사장 인부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하는 발판 100여개를 연결해 가건물을 만들고 연습했다"고 말했다. 7m 높이로 임시 발판을 쌓아 건물 틀을 만들고 줄을 매달아 하루 5~6시간씩 연습에 몰두했다.

지난 15일 국내 유일 공중퍼포먼스 극단‘경계없는 예술센터’배우들이 외벽공연 연습을 하기 위해 문래예술공장 옥상에 모였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손유정·이수윤·김경록·김현창·황성탁·안의숙씨.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지난 15일 국내 유일 공중퍼포먼스 극단‘경계없는 예술센터’배우들이 외벽공연 연습을 하기 위해 문래예술공장 옥상에 모였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손유정·이수윤·김경록·김현창·황성탁·안의숙씨.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공중 공연은 배나 힘들었다. 안의숙씨는 "공중에서 연기하려면 허리와 허벅지로 몸무게를 지탱해야 한다"며 "연습을 하고 나면 한동안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아프다"고 말했다. 공중에서 평행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는 탓에 허리와 무릎, 어깨부분에 특히 부하가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유연한 몸을 만들기 위해 하루에 물을 3L씩 마셨다.

배우들은 암벽 등반용 로프나 요트 돛을 묶는 탄성줄을 몸에 걸고 건물 위아래를 거미처럼 왔다갔다 한다. 배우 손유정(24)씨는 "공연 초반 줄을 건물 한 부분에 매듭으로 묶고 늘어뜨리는데, 줄의 탄성을 유지하면서도 어떤 형태의 건물에서도 안전하도록 매듭을 짓는 것이 노하우"라고 말했다.

다음달 '하이서울 페스티벌'에 공연 선보여

극단은 지난해 8월 인천세계도시축전에서 'Mr.K의 환상도시 여행'이라는 공중 거리퍼포먼스를 처음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공연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미스터 K가 바닷속에서 인어아가씨를 만나는 등 환상 속 여행을 한다는 내용이다. 극단은 지난 1월 2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외벽에서 공중퍼포먼스를 펼쳤고, 1월 28일에는 문래예술공장 개관식에서 버티컬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공연은 30분 정도가 걸린다. 이화원 교수는 "예상치 못한 공연에 즐겁게 봐주시는 시민도 있고, '중국 서커스단이 왔다'며 신기해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경계없는 예술센터'는 최근 영등포구 문래동 문래예술공장에 안정된 둥지를 틀었다. 비나 눈이 올 때도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이들은 오는 4월 '한강 여의도 봄꽃축제' 개막공연과 '하이서울 페스티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5일 국내 유일 공중퍼포먼스 극단 ‘경계 없는 예술센터’배우들이 외벽공연 연습을 하기 위해 문래예술공장 옥상에 모였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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