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BS 교향악단… '함신익 카드' 야심차게 뽑았지만…

입력 : 2010.03.18 05:55   |   수정 : 2010.03.18 10:35

대전시향 이끌었던 예일대 교수 7년째 공석 상임지휘자 후보에
단원들 "일방적 결정" 반발 시위… 법 인화 추진 신호탄으로 여긴듯

회심의 승부수일까, 장고(長考) 끝의 악수(惡手)일까. 7년째 '상임지휘자 공석(空席)'으로 남아 있던 KBS 교향악단이 최근 차기 상임지휘자 선정위원회에서 대전시향 상임지휘자를 지낸 함신익 예일대 교수를 단수(單數) 후보로 추천했다. 최고 경영진의 결재만 남겨둔 상황이지만, 단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함신익씨는 건국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 라이스 대학과 이스트먼 음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1995년부터 예일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예일대 오케스트라인 '예일 필하모니아'를 이끌고 있다. KBS는 함씨가 대전시향 재직 때 국내에서 좀처럼 연주되지 않던 레퍼토리를 발굴하고, '힙합 세대를 위한 악기 올림픽' '퀴즈! 퀴즈! 가족 음악회' '청바지 연주회' 같은 관객 친화적 프로그램을 통해 청중 개발에 앞장선 점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선정위원회에 참여했던 음악계 인사는 "외국에 머물면서 잠깐씩 다녀가는 분보다는 국내에 오래 머물면서 악단을 의욕적으로 맡아서 이끌고 나갈 리더십을 갖춘 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7년째 비어 있던 KBS 교향악단의 새 상임지휘자 후보로 추천된 미국 예일대 교수 함신익씨. 단원들이 반대하고 있고, 법인화 추진 등 당면 과제가 적지 않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뮤직필 제공
7년째 비어 있던 KBS 교향악단의 새 상임지휘자 후보로 추천된 미국 예일대 교수 함신익씨. 단원들이 반대하고 있고, 법인화 추진 등 당면 과제가 적지 않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뮤직필 제공
하지만 KBS 교향악단 단원들은 "지휘자의 음악적 역량을 가장 잘 아는 연주자들의 의사를 무시한 일방적 선임"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휘자 함씨가 음악적 깊이보다는 외형이나 포장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 단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9~10일 KBS 정문 등에서 출근시간에 피켓 시위를 열었다. 교향악단 단원들과 KBS 노조는 "내용 없는 음악회에 관객 수가 늘어날까" "순수음악 존중하라. 서커스는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지휘자 선정을 둘러싸고 KBS와 단원 간의 힘겨루기 모양새가 되고 있는 것은, '교향악단 법인화'라는 또 다른 갈등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KBS는 교향악단을 재단법인으로 독립시키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재단법인 독립 이후에는 한 해 80억여원에 이르는 교향악단 운영비 지원을 40억~50억여원으로 줄여나갈 계획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단원들과 KBS 노조의 격렬한 반발을 샀고 결국 논의는 중단됐다. 지난해 11월 KBS 김인규 사장 취임 이후 KBS나 교향악단 단원들이 교향악단 법인화를 공개 거론한 적은 없지만, 양측 모두 이번 상임지휘자 선출을 법인화 재추진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당사자인 지휘자 함씨는 "아직 정식 임명 이전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부 과정은 알지 못한다"며 말을 아꼈다.

KBS 교향악단은 2004년 말 러시아의 지휘자 드미트리 기타옌코(Kitaenko)가 물러난 이후, 객원지휘자를 초대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KBS 교향악단이 상임지휘자 부재(不在)로 침체에 빠진 반면, 라이벌인 서울시향은 2005년 지휘자 정명훈을 영입하고 법인으로 독립하면서 약진을 거듭했다. KBS 교향악단은 1956년 창단 이후 KBS 소속으로 공연과 방송 연주를 해오다가, 1968년 국립극장으로 운영권이 이관되면서 국립교향악단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하지만 1981년 다시 KBS로 운영권이 넘어왔으며 현재 시청자센터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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