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3.16 02:52
日출신 현대미술 작가 구사마 야요이
"호박은 어릴적 교감하던 자연, 트레이드 마크인 물방울은 지구·태양·달… '무한성' 상징
다른 누구보다 내 상상 믿죠"
일본 출신으로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현대미술 작가 중 한 사람인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81)는 올해 시드니비엔날레와 일본 아이치트리엔날레 참가를 앞두고 작품 제작에 여념이 없다.
구사마는 1959년 뉴욕에서 그물망이 한없이 반복되는 '네트 페인팅(net painting)'을 선보인 첫 개인전을 열었고, 당시 평론가이자 미니멀리즘의 대가로 꼽히는 도널드 저드의 관심을 끌었다. 구사마는 '네트 페인팅'과 'polka dot'라고 불리는 물방울무늬를 반복시켜 '무한성'을 표현했다. 기존의 '중심'을 탈피해 유기적인 무한성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는 소파에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무수한 돌출 부위를 바느질로 꿰맨 '소프트 스캅처(soft sculpture·부드러운 조각)'를 선보였고,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은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았다. 1993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에 일본 대표작가로 참가했으며 1998년 뉴욕 모마(MoMA)에서 《Love forever》전(展)을 가졌다. 2004년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가진 《KUSAMATRIX》전에는 52만명의 관람객이 드는 기록을 세웠다.
구사마는 1959년 뉴욕에서 그물망이 한없이 반복되는 '네트 페인팅(net painting)'을 선보인 첫 개인전을 열었고, 당시 평론가이자 미니멀리즘의 대가로 꼽히는 도널드 저드의 관심을 끌었다. 구사마는 '네트 페인팅'과 'polka dot'라고 불리는 물방울무늬를 반복시켜 '무한성'을 표현했다. 기존의 '중심'을 탈피해 유기적인 무한성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는 소파에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무수한 돌출 부위를 바느질로 꿰맨 '소프트 스캅처(soft sculpture·부드러운 조각)'를 선보였고,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은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았다. 1993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에 일본 대표작가로 참가했으며 1998년 뉴욕 모마(MoMA)에서 《Love forever》전(展)을 가졌다. 2004년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가진 《KUSAMATRIX》전에는 52만명의 관람객이 드는 기록을 세웠다.

구사마는 1929년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시(市)에서 태어나 교토 시립미술학교에서 전통 일본화를 전공했다. 그러나 1957년 보수적인 가족과 가부장적인 일본 미술계를 견디지 못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작품 활동을 펼쳤다. 당시는 해외여행을 맘대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구사마는 미국의 유명한 화가인 오키프에게 편지를 보내 도와달라고 호소할 정도로 과감했다.
50년 넘게 미국과 일본·유럽에서 왕성한 전시를 벌이고 있는 구사마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내가 태어난 곳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매사가 보수적이고 자유롭지 못한 환경이었다. 당시 나는 미술작업과 시작(詩作)을 하면서 도쿄 등 일본 국내에서 활동했지만 세계무대에서 크게 활약해보고 싶어 미국행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했던 그는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으로 한국에 많은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사마는 그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도널드 저드에 대해 "저드는 뉴욕 미술계에서 최첨단을 달리던 선구자 중 한 사람이었다"면서 "나의 창조적인 작품을 높이 평가해주고 국제 미술계에 나를 추천해 주었다"고 말했다. 구사마는 "뉴욕에서 백남준과 친하게 지냈으며 예술가로서 그를 매우 존경한다"며 "그를 통해 한국 예술가들의 우수성을 알게 됐고, 백남준의 빛나는 철학이 세계 예술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작가는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얻은 것에 대해 "인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테러나 빈곤·핵이 없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를 지키기 위해 창조력이 있는 한 힘껏 싸우겠다"고 말했다.
구사마는 어린 시절 물방울무늬가 자신의 몸과 방안 전체로 뒤덮이는 환상을 본 뒤로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작가는 "내 트레이드마크의 하나가 된 물방울은 지구, 태양, 달, 우리 모두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호박은 어렸을 때 교감하던 자연을 상징, 작가의 분신(分身)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작가는 "호박을 좋아하는데 재미있게 생긴 모양새도 좋아한다"면서 "크고 붉은 호박과 노란 호박을 가가와현의 나오시마 해안에 만들었는데 지금은 관광의 메카가 되었다"고 소개했다.
구사마는 "나는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기보다 신비롭고 독창적인 내 상상에 의지한다"면서 "내 인생 전반에 걸친 모든 행위와 발전이 내가 만들어낸 가장 좋은 작품이자 퍼포먼스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50년 넘게 미국과 일본·유럽에서 왕성한 전시를 벌이고 있는 구사마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내가 태어난 곳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매사가 보수적이고 자유롭지 못한 환경이었다. 당시 나는 미술작업과 시작(詩作)을 하면서 도쿄 등 일본 국내에서 활동했지만 세계무대에서 크게 활약해보고 싶어 미국행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했던 그는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으로 한국에 많은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사마는 그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도널드 저드에 대해 "저드는 뉴욕 미술계에서 최첨단을 달리던 선구자 중 한 사람이었다"면서 "나의 창조적인 작품을 높이 평가해주고 국제 미술계에 나를 추천해 주었다"고 말했다. 구사마는 "뉴욕에서 백남준과 친하게 지냈으며 예술가로서 그를 매우 존경한다"며 "그를 통해 한국 예술가들의 우수성을 알게 됐고, 백남준의 빛나는 철학이 세계 예술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작가는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얻은 것에 대해 "인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테러나 빈곤·핵이 없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를 지키기 위해 창조력이 있는 한 힘껏 싸우겠다"고 말했다.
구사마는 어린 시절 물방울무늬가 자신의 몸과 방안 전체로 뒤덮이는 환상을 본 뒤로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작가는 "내 트레이드마크의 하나가 된 물방울은 지구, 태양, 달, 우리 모두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호박은 어렸을 때 교감하던 자연을 상징, 작가의 분신(分身)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작가는 "호박을 좋아하는데 재미있게 생긴 모양새도 좋아한다"면서 "크고 붉은 호박과 노란 호박을 가가와현의 나오시마 해안에 만들었는데 지금은 관광의 메카가 되었다"고 소개했다.
구사마는 "나는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기보다 신비롭고 독창적인 내 상상에 의지한다"면서 "내 인생 전반에 걸친 모든 행위와 발전이 내가 만들어낸 가장 좋은 작품이자 퍼포먼스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