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피나 바우쉬의 전설

입력 : 2010.03.11 13:38

피나 바우쉬 '카페 뮐러' & '봄의 제전'

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쉬
지난 2009년 6월 30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쉬의 명작 두 편이 추모 공연 형식으로 서울에서 무대를 마련해 화제다. 피나 바우쉬는 전 세계 공연예술계를 이끌었던 아니,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세계적 거장임에 틀림없다. 그의 별세 소식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지인에게 전해 들었다.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여행객의 몸과 마음은 비보에 휘청거렸다. 그때를 기억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피나 바우쉬는 1973년 독일 중서부 작은 공업도시 부퍼탈 시립극장의 예술감독 및 안무가로 부임한 후 자신만의 표현 양식과 무대 미학은 물론, 인간을 주제로 자신의 신념과 열정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이며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롤 모델로 당당히 자리매김해왔다.

지난해 4월, 밀양 백중놀이 무형문화재 하용부의 ‘프랑스 파리 상상축제’ 초청 공연을 마친 필자를 포함한 일행은 피나 바우쉬가 살고 있는 독일 부퍼탈로 달려갔다. 그는 부퍼탈 오페라극장 재개관 기념으로 1970년대 자신의 대표 무용 오페라 '타우리스 섬의이피게니'를 무대에 올리며 명성과 건재를 과시했다. 그는 마지막 커튼콜에 등장했다가 기립 박수를 뒤로한 채 무대 뒤편에서 소박하면서도 수줍은 미소를 띤 얼굴로 우리를힘껏 포옹하며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2010년 봄이 오면 LG아트센터 개관 10주년 기념 공연에서 다시 재회하자던 그였는데, 이제 3월 18일부터 21일까지 추모 공연을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다.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계승자로서 ‘탄츠 테아터’라는 독특한 공연 양식을 만들어 때로는 서정적으로, 때로는 잔혹하게 무용과 연극의 경계를 허물며 움직임 예술의 신세계를 창조한 거장. 한국 음악과 춤, 전통문화를 사랑했고 우리 무용계의 ‘워너비’였다. 그는 발레리나로 출발했지만 무용이라는 작은 울타리에 얽매이지 않고, 독일의 작은 소도시에서 태어났지만 유럽에 머물지 않고 한껏 당당히 살아왔다. 그는 담배와 커피를 지독히도 좋아했다.

피나 바우쉬는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1979년 '봄의 제전'으로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이후, 2000년 '카네이션', 2003년 '마주르카 포고', 2008년 '네페스 ; 숨'을 공연했다. 또한 도시 여행에 관한 감성을 담은 세계 도시, 국가 시리즈의 일환으로 2005년에는 한국 문화를 담은 '러프 컷'을 선사하기도 했다.

여섯 번째가 되는 이번 공연은 그의 전설적인 초기 작품 두 편이 소개된다. 2차세계대전으로 암울한 분위기 속의 독일, 부모가 운영하던 카페에 대한 유년 시절의 기억을 담은 자전적 작품 '카페 뮐러'(1978년 안무, 50분), 그리고 30여 년 전 첫 내한 공연을 가지며 국내 관객과의 우정의 시발점이 된 '봄의 제전'(1975년 안무, 30분)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스트라빈스키 작곡의 거칠고 야만적인 불협화음, 긴장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리듬과 멜로디는 만물이 꿈틀거리며 다시 태어나는 폭발적 에너지와 봄의 생명력, 그리고 원초적인 색채를 담고 있다.

육체의 저항과 새로운 춤사위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세기 음악과 무용의 혁신으로 상징되고 있다. 가장 강렬하고도 원시적인 춤사위가 진흙 더미 위에서 펼쳐지는 피나 바우쉬의 '봄의 제전'을 지금껏 전해지는 수많은 안무가의 작품 중에서 많은 이들이  첫손가락으로 꼽는 이유를, 우리 관객들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무대 전체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텅 빈 테이블과 의자를 배경으로 음울한 아리아가 흘러나온다. 어쩌면 몽유병자처럼 공간을 부유하는 듯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해 고독과 좌절, 우울함과 쓸쓸함, 마치 황폐화된 전후 독일 사회에 대한 은유와 메타포를 담아낸 작품이 바로 '카페 뮐러'다. 이 작품의 한국 공연을 통해 오랜만에 직접 무대에서 춤을 선보이겠다는 그의 약속은 이제 지켜지지 못하게 됐지만, 전 세계를 대표하는 다국적 무용수들과 제자들에 의해 피나 바우쉬의 위대한 예술혼과 열정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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