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 쓸쓸… 채플린식 '광대의 하루'
가방 들고 길을 걷지만 달팽이처럼 항상 제자리… '마임의집'은 4월말 문닫아
지난 6일 저녁 강원도 춘천시 옥천동 마임의집에서 공연된 강정균의 마임 《가방 in》은 유쾌하면서도 쓸쓸했다. 1998년 문을 연 마임의집은 국내에 하나뿐인 마임 전용극장이다. 이날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총 328회 공연한 마임의집은 3~4월 공연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좀 더 좋은 시설을 갖춘 마임 전용관이 오는 5월 춘천시 효자동에 개관하지만 한국 마임의 한 시대가 저무는 셈이다.

마임이스트 강정균이 극본을 쓰고 연출하고 직접 출연한 《가방 in》은 방랑하며 길에서 공연하고 먹고 자는 '광대'의 하루를 담고 있다. 이 마임은 주인공의 여행가방이 열리면서 출발해 그것을 닫는 것으로 끝난다. 〈신문〉〈인생〉〈풍선〉 등 세 에피소드로 구성된 《가방 in》은 찰리 채플린식의 팬터마임과 광대극이 혼합돼 있다. 일상을 소재로 관객과 접촉하는 표면적이 넓었다. 윽박지르는 호각 소리를 효과음으로 집어넣는 등 제3의 시선을 보여주려는 장치도 있었다. 관객을 무대로 끌어내는 솜씨와 소품을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였지만 깊이나 철학은 미흡했다.
〈신문〉에서는 신문을 보며 킬킬거리던 사내가 신문 붙잡고 줄다리기를 시작하고 점점 신문에 끌려 다닌다. 급기야 신문은 그의 얼굴에 척 들러붙고, 구겨 패대기치려 해도 안 떨어진다. 뉴스와 문자에 대한 패러디다. 〈인생〉은 태어나 자라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늙어가는 사이클을 손에 잡힐 듯 그려냈고, 〈풍선〉에서는 풍선을 허리띠·지팡이·거울·넥타이·강아지 등으로 변형시키며 객석을 웃겼다. 편리함에 저항하는 몸의 언어가 풍성했다.
강정균에게 가방은 과거이고 미래다. 보여주기 싫은 것들을 숨기는 곳이자 낯선 장소로의 여행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여행가방은 또 '움직이는 집'이다. 짐을 싼 강정균이 가방을 들고 걷는데 달팽이처럼 거의 제자리였다.
《가방 in》은 5월 23~30일로 예정된 올해 춘천마임축제 참가작이다. 마임의집은 13일에 부부의 일상을 포착하는 《우리는 이렇게》를 공연하는 등 4월 말까지 마지막 기획으로 무대를 채운다. 공연장으로 오르는 계단마다 켜놓은 촛불도 운치가 있었다. 유진규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은 "마임의집은 '마임도시 춘천'의 약속을 지키려고 연 공간이었고 한국 마임의 상징이었다"고 말했다. (033)242-0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