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다 관객에게 감동받는 '착한 바보들'

입력 : 2010.02.26 00:27   |   수정 : 2010.02.26 00:27

전국 돌며 무료 공연 500회 '극장을 떠난 바보 성악가들'
우주호씨가 6년 전 결성 농촌·병원·교도소 등 방문
좋아하는 관객들 보고 "음악이란 이런 거구나"

"창 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감미로운 노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선율이 천장 낮은 도서관 강당을 가득 채웠다. 25일 오후 3시 경기도 수원시 권선동에 있는 '지혜샘도서관'은 예술의 여신 뮤즈(muse)에 사로잡혔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관객 100여명은 홀린 듯한 표정으로 무대를 응시했다. 5~7살 어린아이가 대부분에, 기저귀 찬 갓난아기까지 있는데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자 엄마들부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브라보! 브라보!"

이날 가족을 위한 무료 음악회를 연 것은 검은 턱시도를 입은 남성 성악가 9명. 대학 강단이나 오페라단에서 활동하는 정상급 성악가들이 모여 바리톤 우주호(43)씨를 중심으로 만든 앙상블팀 '우주호와 음악친구들'(W.M.F)이다.

‘우주호와 음악친구들’ 성악가들이 25일 수원시 지혜샘도서관에서 공연하고 있다. 이들은 “무료 음악회지만 정말 훌륭한 공연을 경험했다는 느낌을 받고 돌아가시도록, 다들 백발이 될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했다./김진명 기자
‘우주호와 음악친구들’ 성악가들이 25일 수원시 지혜샘도서관에서 공연하고 있다. 이들은 “무료 음악회지만 정말 훌륭한 공연을 경험했다는 느낌을 받고 돌아가시도록, 다들 백발이 될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했다./김진명 기자

이들에게는 '극장을 떠난 바보 음악가'란 별칭이 있다. 성악가라면 음향시설이 좋은 무대에서만 노래하고 싶게 마련인데,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골 면사무소 앞마당이든 노인복지관 복도든 가리지 않고 찾아다녀서다. 대표 우씨가 2004년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결성한 뒤, 전국 농어촌·복지시설·병원·교도소·다문화가정 등을 돌며 500번 넘게 열었다.

처음엔 우씨가 아는 성악가 한두 명이 서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식구가 늘어 14명이다. 테너 유현국·송승민·김준홍·구형진·김홍기·민경환씨, 바리톤 이진원·박영욱씨, 베이스 이병기·손철호·최경훈·정성영씨, 반주자 신한나·우수현씨가 짬 날 때마다 참석한다. 2007년부터는 수원 삼호아트센터가 후원해주기 시작해 한결 수월해졌다.

"처음엔 그저 클래식을 어려워만 하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들을 기회를 주고 싶었죠." 우씨는 "지금까지 550번쯤 공연했는데, 이렇게 오래 계속될지는 나도 몰랐다"고 했다. 그런데 관객이 10명이든 200명이든 최선을 다해 노래 부르다 보니 오히려 성악가들이 감동받고 관객으로부터 배우는 게 많아졌다고 한다. "나환자촌에 가서 노래를 부르다가 우리도 모르게 그분들 손을 잡고 부둥켜안았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멍하니 '음악이 이런 거구나' 생각했어요."

앙상블팀 예술단장인 테너 유현국(45)씨도 "농어촌에서 음악회를 마친 뒤 여든살, 아흔살 어르신들이 다가와 '성악가 노래를 직접 듣기는 처음'이라며 손잡을 때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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