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II] 장흥 아틀리에 한 지붕 두 부부

입력 : 2010.02.25 03:05

위층 최문선·김민선 부부
獨·佛·美 등 오가는 '아틀리에 노마드' "작업실이 곧 신혼집이죠"
아래층 정경희·김무현 부부
프레스 기계로 판화 찍고 아크릴판에 바늘로 긋고 판화 3D는 모두 남편몫

'아틀리에(atelier)'는 프랑스어로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말한다. 국내에는 20여개 단체가 예술가들을 위해 아틀리에를 열고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06년 모텔을 개조해 문을 연 양주시 장흥면 장흥아트파크 아틀리에에는 모두 54명의 작가들이 작품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10일 이곳에서 작업 중인 서로 다른 한 지붕 두 부부를 만났다. 이들은 100㎡(약 30평) 공간에서 때론 목소리를 높이며 때론 함께 웃으며 작업한다. 부부가 작가인 경우는 많지만 평생 공동의 작품을 만드는 것은 드문 일이다.

‘아틀리에 노마드’최문선(왼쪽), 김민선씨 부부가 작업실에서 다정하게 이야기
를 나누고 있다. 김씨는“작업할 때는 예술가로서 자존심을 걸고 싸워요. 우리 작
품은 부부싸움의 결과물이죠”라며 웃었다./김건수 객원기자 kimkahns@chosun.com
‘아틀리에 노마드’최문선(왼쪽), 김민선씨 부부가 작업실에서 다정하게 이야기 를 나누고 있다. 김씨는“작업할 때는 예술가로서 자존심을 걸고 싸워요. 우리 작 품은 부부싸움의 결과물이죠”라며 웃었다./김건수 객원기자 kimkahns@chosun.com
디지털 영상미디어 아티스트, 위층 부부

2.5t짜리 미술작품도 실을 수 있는 대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틀리에 2층으로 올라갔다. '뮌(MIOON)'이라고 적힌 문 앞에서 작업실을 잘못 찾은 건 아닌지 잠깐 머뭇거렸다. 그때 뽀얀 피부의 최문선(38)·김민선(38)씨 부부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최씨가 내민 명함에는 김씨와 최씨의 이름 '민'과 '문'을 합친 '뮌'이란 이름이 찍혀 있었다. 이들의 작업실은 깔끔하다 못해 아늑한 가정집 같았다. 김씨는 "이곳은 작품을 구상하고 영상을 만드는 곳이에요. 설치작업은 전시장에서 뚝딱 하죠"라고 말했다.

위층 부부는 둘 다 홍익대를 졸업한 뒤 독일에서 공부한 유학파다. 1998년 독일 브라운슈바이그(Braunschweig)대에서 함께 공부하던 중 눈이 맞았다. 조소과를 졸업한 김씨는 작가가 되는 것을 반대한 어머니에게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행복하게 살 거예요"라고 말한 뒤 훌쩍 독일로 떠났다. 토목공학과를 나온 최씨는 건설회사를 다니던 중 대학 때 빠졌던 사진을 전공하겠다며 뒤늦게 유학길에 올랐다. 서울에서 태어나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서로 몰랐던 그들은 그렇게 독일에서 부부가 됐다.

풀벌레를 소재로 한 판화를 찍어내는 정경희(오른쪽), 김무현씨 부부. 다음달말까지
18점을 완성해 내기 위해 밤중에도 바쁘다. 서울의 한 특급호텔에 걸릴 작품이다./김건수 객원기자
풀벌레를 소재로 한 판화를 찍어내는 정경희(오른쪽), 김무현씨 부부. 다음달말까지 18점을 완성해 내기 위해 밤중에도 바쁘다. 서울의 한 특급호텔에 걸릴 작품이다./김건수 객원기자

이들은 보기 드문 '아틀리에 노마드'(작업실 유목민)다. 한국의 여느 부부처럼 한 자리에서 살림을 차린 적이 없다. 브라운슈바이그대 작업실에서 만난 이래 독일 쇠핑엔, 서울 창동창작스튜디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미국 뉴욕 등 4곳의 아틀리에를 옮겨 다녔다. 작업실이 곧 신혼집이었다. 김씨는 "2005년 한국에 들어왔지만 가진 돈은 독일 주 정부에서 받은 상금 1000만원밖에 없었어요. 서울 홍대 근처 월세를 전전하며 또 아틀리에 공모에 지원했죠"라고 말했다. 오는 4월과 10월에는 미국 뉴욕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아틀리에의 초청을 받아 떠난다. 최씨는 "작업실을 따라 옮겨 다니다 보니 결혼식은커녕 혼인신고도 2006년에야 마쳤어요"라며 "내년엔 살림집도 마련하고 아이도 가져야겠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틀리에 안에서 고독한 '방콕족(族)'이다. 김씨는 "둘 다 술을 못마시는데다 외국생활을 오래해서 국내에 친구들이 별로 없어요. 둘이 함께 영화 보고 책 읽는 게 낙이죠"라고 말했다. 그들이 영상미디어를 통해 표현하려는 것도 '현대사회 속 군중'이다.

풀벌레 판화 찍어내는 아날로그, 아래층 부부

조용한 위층과 달리 아래층은 오후 9시에도 분주했다. 정경희(45)·김무현(48)씨 부부의 작업실은 프레스 기계로 쿵쿵 판을 찍는 소리, 아크릴판에 바늘(니들)로 찍 긋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정씨가 "아따~ 판맛이 느껴질라믄 지대로 눌러야제"라며 남편 김씨를 다그쳤다. 그렇게 비단 천에 찍힌 나비는 마치 세밀한 수묵화를 보는 듯 생생했다. 그는 이 질감을 '판맛'이라고 불렀다. 부부는 판맛을 흠뻑 즐기기 위해 한 손엔 바늘을 한 손엔 맥주잔을 들었다.

아래층 부부는 둘 다 전라도 시골에서 상경했다.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정씨는 오직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미술학원에서 실습장학생으로 일하며 공부해 5수 끝에 서울 추계예술대학에 진학했다. 전남 장성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홍익대를 졸업한 김씨는 사업을 하던 1999년 정씨를 만났다. 김씨는 "어릴 때부터 예술가를 꿈꿨는데 시골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때 아내가 나타난 거죠"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김씨는 정씨를 위해 평생 프레스 기계 핸들을 잡기로 했다. 김씨는 "판화의 3D는 모두 제가 다 하지요"라며 웃었다.

1t이 넘는 프레스 기계 핸들을 돌리는 김씨의 검게 탄 팔뚝이 10년 경력만큼이나 단단해 보였다. 손가락 곳곳에 밴드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위층 부부와 달리 모든 작품은 아내의 이름으로 낸다. 김씨는 "누구 이름으로 내면 뭐해요. 내 마누란데"라며 씩 웃었다.

뮌이 아틀리에 노마드라면 이들은 '공모전 노마드'다. 1000만원 이상이 드는 개인전 비용을 마련할 수가 없어서 공모전에 자주 응모하다 보니 지금까지 치른 11번의 전시가 모두 공모전 당선전시다.

하지만 이들은 팍팍한 살림에도 매주 '환경판화 작가체험 프로젝트' 행사를 열고 있다. 정씨 부부가 아크릴판을 들고 나가 시민들과 함께 판화 작품을 만드는 행사다. 2003년 서울 중랑천에서 연 행사에는 준비해간 아크릴판 100개가 1시간 만에 동이 났다. 김씨는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우리처럼 어렵지만 미술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참 많다는 걸 느껴요. 그런 아이들을 위한 미술학교를 내는 것이 우리 부부의 꿈이에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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