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의자 12개가 모였다 흩어지고

입력 : 2010.02.24 23:26

연극 '왕벚나무동산'

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연극 《왕벚나무동산》은 긴 의자 12개부터 눈에 들어온다. 의자들은 모였다 흩어지고 세로로 벌떡 일어서기도 한다. 평상으로, 대합실 의자로, 문(門)으로…. 의자는 이 극단을 기억하게 하는 핵심 오브제(objet)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는 신체극 《보이첵》에서도 의자 12개와 배우들의 움직임만으로 밀도 높은 드라마를 빚어냈다.

《왕벚나무동산》은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을 한국화했다. 배경은 1940년대 후반 해방기의 경북 안동이다. "여 안동에 유세 떨만한 기 있다면 이기다" 같은 사투리가 질펀하다. 연출가 임도완은 "원작을 지주와 소작인이 뒤바뀌면서 시끄러웠던 때로 가져와 우리 땅에 맞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 《왕벚나무동산》./사다리움직임연구소 제공
연극 《왕벚나무동산》./사다리움직임연구소 제공

여주인공 권윤애 여사는 일본에서 무능한 오빠가 사는 고향 안동 벚나무 동산으로 돌아온다.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는 빚의 담보로 묶여 있다가 경매에 부친다. 옛날, 이 토지를 부쳐 먹던 소작인의 아들 천용구가 그 벚나무 동산을 사들인다.

임도완은 《왕벚나무동산》을 구상할 때 기차역 대합실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고 했다. "사람들은 다 차표 한 장 가지고 어디론가 떠나간다"는 것이다. 무대에도 대합실 풍경이 등장한다. 연출가는 "엇갈리는 시선과 소통의 부재를 표현하려 한다"면서 "정처 없음에 대한 상징 같아서 윤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도 집어넣었다"고 했다.

이 연극은 '안톤 체호프의 코미디가 비로소 이루어지다'라는 홍보 카피를 뽑았다. 체호프는 《갈매기》 등 자신의 희곡들을 희극이라고 불렀다. 임도완은 "일상에서 상황이나 실수 때문에 생기는 웃음을 군데군데 심어놓았다"고 말했다.

《보이첵》과 달리 대사가 많지만, 마지막 4막에는 없다. 무대 둘레에 4각 테두리처럼 만든 길, 공간을 확장하는 조명이 볼거리다. 기차표를 공중에 확 뿌리는 엔딩이 강력할 것 같다. 지는 벚꽃의 상징이다.

▶3월 14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889-3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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