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부천] [포커스] 30년 소극장 '돌체' 사라지나

입력 : 2010.02.23 06:21

건물주 남구청-기존 운영자 '마임' 갈등
남구 "새 운영자 선정 적법"… 마임측 "법원 결정 따를 것"… 문화계 "돌체 이름 살려야"

소극장 '돌체'.

인천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중구 경동 기독병원 밑 골목 끝에 있던 이 조그만 극장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극단 '마임'을 이끄는 연극인 최규호(51)·박상숙(51) 부부가 1979년 문을 연 이 소극장은 그 뒤로 문화 불모지인 인천에 연극을 전파하는 하나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2007년 너무 낡아버린 중구의 건물을 떠나야 했던 부부는 남구청과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남구 인천도호부 청사 옆에 새 극장을 얻고, '작은 극장 돌체'라는 간판을 이어 걸었다. 그 돌체가 요즘 사라질 운명에 놓여있다. 이 극장의 소유주로, 지난 3년 동안 극장을 '마임'에 맡겨 운영했던 남구청이 위탁운영 주체를 남구 '학산문화원'으로 바꾸기로 하고, 새로운 극장 이름 공모에 나섰기 때문이다.

운영자 선정을 놓고 갈등에 휩싸인 소극장 '돌체'. /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운영자 선정을 놓고 갈등에 휩싸인 소극장 '돌체'. /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남구 "다수결에 따른 결정"

남구는 위탁운영 만기 1개월여를 앞둔 지난해 11월 이 극장을 운영할 주체를 다시 공모했다. 공모에는 '마임'과 '학산문화원' 2곳이 응했다. 지난 3년 동안 다양한 문화행사를 벌여온 '마임'은 "문제가 없는 한 (현재 운영 주체가) 우선 선정될 기회를 갖는다"는 처음 위탁조건을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 달 남구청에서 열린 선정작업 결과 '마임'보다 '주민화합 분야 활동'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산문화원이 일반의 예상을 깨고 새 운영주체로 선정됐다. 위촉운영위원 다수결에 따른 결과인 만큼 겉보기에는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뭔가 배경이 있다"며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학산문화원은 순수 창작극보다 주민문화학교나 교양강좌를 위주로 운영하는 만큼 전문 공연예술 단체인 '마임'과는 성격상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구청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마임'에 건물을 비워줄 것을 요구하는 한편 극장의 이름도 새로 공모하고 있다. 공공의 재산인 극장의 전문성에는 관리·운영의 전문성이 중요한데 이 점에서 학산문화원이 '마임'보다 낫다는 것이 구청의 입장이다. 남구청 손태영 문화공보실장은 "심사는 공정했고, 극장은 한 극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민을 위해 지은 곳"이라며 "공공 부문에서 활동을 많이 한 학산문화원이 극장 운영을 맡고 '마임'은 다른 예술단체들과 함께 이 극장에 프로그램 제공자로 참가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돌체 "법원의 결정에 맡기겠다"

하지만 '마임'은 남구청의 요구를 거부하는 한편 심사 내용을 공개할 것을 요구해 갈등이 커지고 있다. 위탁운영을 해온 지난 3년 동안 '클라운 마임 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으로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다른 어떤 단체에도 밀리지 않는 큰 역할을 했고, 구청에서도 이런 면에서 아무런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는 만큼 운영주체에서 밀려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마임'의 입장이다. 마임과 돌체 공동대표인 박상숙씨는 "남구에서 작은 사업비 보조를 받았을 뿐 극장의 모든 운영비와 경비를 자체 조달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를 감수하면서 열정을 갖고 운영해왔다"며 "극장의 상표 가치를 높여야 뛰어난 공연단체들이 모여들고, 시민들을 위해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전문성 강화에 노력해 왔는데 구청은 이런 극장의 전문성을 가볍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어 "위탁운영자를 바꾸는 데 필요한 조례 규정 등의 법적 절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린 구청의 결정에 대해 법적 판결을 받겠다"고 덧붙였다. '마임'은 이뿐 아니라 앞으로 이 극장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무료공연을 벌이는 한편 올해로 15회째를 맞는 '국제 클라운 마임 축제'도 계획대로 열 계획이다. 이번 축제에는 현재 15개국에서 23개팀이 참가 신청서를 내놓고 있다.

"'돌체' 이름은 살리자"

이번 사태에 대해 지역 문화예술계의 걱정이 적지 않다. 문화 불모지인 인천에서 전문극단으로서 갖고 있는 '마임'의 역할과 '돌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 15년을 이끌어온 '클라운 마임 축제' 등을 그냥 버릴 수는 없다는 얘기다. 해반문화사랑회 백영임 사무국장은 "돌체라는 이름이 갖는 지역의 문화경쟁력이나 전문성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라며 "지역주민이나 시민 공청회를 통해 '돌체'와 '마임축제' 등의 가치와 방향에 대해 충분한 얘기를 나누고 그 다음에 어떤 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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