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잠긴 목소리에 비상, 연출자가 꿀물 대령이오~
오늘은 나난(전혜빈)의 스물아홉번째 생일. 3년간 사귄 남자친구가 준비한 깜짝 생일선물은 이별 통보였다. 소주병을 나발불며 "X새끼 찢어죽이고 말려죽일 거야"라고 절규하는 나난.
다음날 아침 나난에게 남은 건 역류 직전의 소주 찌꺼기와 깨질 듯한 머리. 나난을 짝사랑하는 수헌(김동호)은 출근길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는데, 사랑스러운 그녀의 입에서 튀어 나온 아침 인사는 내장 깊숙이서 솟아 올라오는 맑은 트림뿐. "너무 긴장해서 많이 떨렸어요." 가수 출신 연기자 전혜빈이 '싱글즈'로 뮤지컬 데뷔 무대를 가졌다.
뮤지컬 '싱글즈'는 2007년 초연 이후 이현우 손호영 이종혁 김지우 등 스타 캐스팅으로 주목받아온 작품. 여주인공 나난은 영화 '싱글즈'에서 고 장진영이 연기했던 캐릭터다.
전혜빈의 데뷔전을 지켜보기 위해 지난 18일 밤 서울 대학로 PMC 자유극장을 찾았다.
▶공연 중 꿀물 공수작전
첫번째 노래부터 심상치 않다. 목소리가 반쯤 잠겨 있었다. 긴장한 탓도 있겠지만, 진짜 사정은 딴데 있었다. 아침부터 목을 너무 많이 쓴 탓이다. '싱글즈' 제작사인 악어컴퍼니의 박지향 대리는 "오늘이 전혜빈씨의 첫 공연이라 배우분들이 오전 9시부터 극장에 나와 리허설을 두번이나 하고 무대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전혜빈의 목상태를 낫게 하기 위해 조행덕 연출자가 부리나케 뜨거운 꿀물을 사왔다.
함께 출연한 정준 역의 이지송은 "목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건 배우로서 잘못이지만, 첫 무대치고 아무런 사고 없이 끝낸 건 대단한 일"이라며 "엄청난 열정과 노력을 쏟아붓는 친구니 앞으로도 잘할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전혜빈은 19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린 글에서 '어제 첫공연은 실수없이 무사히 끝났지만 암전 때 뛰어들어가다 들어오던 세트에 정강이 찍어 뼈보임.(소리도 못 지름) 리허설 무리하게 해서 목이 맛이가 상태에서 공연함(젠장)'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전혜빈은 극중에서 술을 많이 마시는 장면이 많다.
남자친구에게 버림받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신세한탄을 할 땐 연기인지 실제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사실적인 연기력이 돋보였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떡실신녀 황정음에 버금가는 만취 연기다. 마시는 척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무대 위에서 맥주 500㏄를 '원샷'하기도 한다. 꿀꺽 꿀꺽 원샷 뒤엔 당연히 걸죽한 트림이 뒤따른다.
공연 뒤 만난 전혜빈은 "매회 원샷을 해야 해요. 500 한잔 다 마시고 나면 배에서 출렁출렁 소리가 날 지경이죠. 원래 술은 잘 못 마셨는데, 이제 트림도 잘해요. 트림이라면 자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제 키스 46번 남았어요
전혜빈은 2002년 여성 3인조 그룹 '러브(LUV)'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듬해 시트콤 '논스톱3'와 '상두야 학교 가자'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전향했고, 2004년엔 영화 '령'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했다. 지난해엔 드라마 '전설의 고향'과 '결혼 못하는 남자' 등에 출연했다. 가수 출신 연기자라는 수식어가 한계처럼 따라다니긴 하지만, 오히려 NG가 허용되지 않는 무대 위에서의 연기력은 합격점이었다. 극중 나난이라는 인물이 방황과 상처를 딛고 한계단 성장하듯이, 전혜진도 '싱글즈'를 통해 배우로서 한발짝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전혜빈은 19일 두번째 공연을 마친 뒤 자신의 미니홈피에 'ㅎㅎ 이비인후과 치료를 받은 덕인지 오늘 공연 실수없이 대성공. 근데 남자 바꿔가며 키스신 하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음. 이제 46번 남았음. 키스신'이라고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