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만에 제자리 찾은 작품… 賞까지 받아 영광"

입력 : 2010.02.19 02:48   |   수정 : 2010.02.19 03:16

'명동성당 정문 청동조각'으로 가톨릭미술상 특별상 받은 조각가 최의순
87년에 완성했지만 건물 오래돼 설치 미뤄져
"聖地 돌며 1년간 공부… 한국 천주교 역사 담아"

"저는 만들고 난 후 20년 이상 잊고 지냈는데 지난해에는 명동성당 정문에 제 작품이 설치되고 이번에 상(賞)까지 받게 되니 신앙인과 조각가로서 큰 영광이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지난 17일 백발의 노(老) 조각가 최의순(76·서울대 미대 명예교수)씨는 서울 명동성당 정문을 장식한 자신의 브론즈 작품을 어루만지며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지난해 2월 명동성당 정문엔 최씨가 1985년 의뢰받아 1987년 완성했던 청동부조(浮彫)가 설치됐다. 그리고 그 공로로 최씨는 18일 열린 제15회 가톨릭미술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지난 1985년 당시 명동성당 김수창 주임신부가 최씨에게 청동조각으로 정문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1967년 절두산성지의 십자가의 길 14처(處)를 비롯해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때 기념메달까지 천주교 미술작품을 많이 제작했던 최씨였다. 김 신부는 그에게 한국 천주교의 얼굴인 명동성당에서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보여줄 작품을 맡긴 것이다.

서울 명동성당 정문을 청동부조로 제작한 원로조각가 최의순씨는“성당을 찾는 분들이 이 문을 보고 우리 천주교의 뿌리와 선조의 신앙심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한수 기자
서울 명동성당 정문을 청동부조로 제작한 원로조각가 최의순씨는“성당을 찾는 분들이 이 문을 보고 우리 천주교의 뿌리와 선조의 신앙심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한수 기자

"의뢰를 받고 1년을 꼬박 공부하고 순례했습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최석우 신부(후에 몬시뇰 임명)님과 고려대 조광 교수께 여쭤보고 기본개념을 잡은 후 국내 성지를 샅샅이 훑었습니다."

최씨는 틈만 나면 교회사 책을 들고 솔뫼·해미·천진암·절두산·베론 성지(聖地)를 찾았다. 구체적 유물이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교통도 좋지 않은 첩첩산중이었지만 그는 극심한 고통 속에 신앙을 이어간 선조들을 깊이 묵상했다. 그렇게 성지순례를 하는 동안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이 가슴에 와 닿았고, 신앙 선조들이 피난 가는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가 됐다. 그 감동을 모아 문에 한국에서 최초로 미사를 드린 중국인 주문모(周文謨·1752~1801) 신부와 그의 제자이자 평신도단체인 명도회(明道會) 초대 회장 정약종(丁若鍾·1760~1801)이 영성체하는 모습,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로 고아와 병자를 돌본 메스트르(1808~1857) 신부, 박해를 피해 피난 가는 신자들과 그들이 생계를 위해 만들어 팔았던 옹기를 새겼다.

1987년 작품은 완성됐지만 명동성당 건물이 너무 오래돼 청동 문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지 우려가 있어 미뤄졌다가 지난해 명동성당이 보수를 마치면서 22년 만에 설치된 것이다. 최씨는 "만들 수 있어서 좋았고 제 할 일을 했기 때문에 교회의 결정을 기다렸다"며 "제가 천주교 신앙을 통해 받은 복(福)이 워낙 많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1953년 서울대 미대 조소과에 진학한 그는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잔인함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 서울대 미대 장발 학장은 "너는 수사(修士)가 되면 좋겠다"며 최씨에게 천주교 입교를 권했다. 교리공부를 지도한 명동성당 윤형중 신부는 군에 입대하는 최씨에게 "군에서도 교리 공부를 놓지 말라"며 계속 편지를 보냈다. 대학원에서 예술론을 가르친 예수회 김태관 신부는 "좋은 마음이 인격으로 드러나고 예술로도 이어진다"고 신앙인과 예술가로서의 자세를 당부했다. 학생 시절의 가르침들을 50년이 지난 지금도 신앙과 삶의 지표로 삼고 있다는 최의순씨는 "명동성당을 찾는 분들이 이 문을 보고 우리 선조들의 신앙을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로 조각가 최의순씨가 제작한 지 22년만인 2009년초 서울 명동성당 정문에 설치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씨는 15회 가톨릭미술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김한수 기자 han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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