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첼로 잡은 산골 학생들 "1년 만에 학교 성적도 잡았어요"

입력 : 2010.02.10 03:04   |   수정 : 2010.02.10 11:07

평창군 계촌初 오케스트라 내일 졸업식 겸한 연주회
작년 결성… 전교생 참여 '폐교위기' 학교의 승부수
산만하고 우울했던 학생들 밝게 변하고 학교생활 열심

지난 8일 오전 11시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초등학교 강당. "끼~잉, 깨~엥" 하며 제각각이던 악기 소리가 지휘봉 움직임에 따라 은은한 선율로 바뀌었다.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의 '위풍당당 행진곡'이다.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현대성우리조트에서 구불구불 산길로 10여㎞는 가야 나오는 이 오지 학교에 이런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오케스트라가 있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전교생 48명이 연주자가 된 '계촌 스트링 오케스트라(Gyechon string orchestra)'. 악보를 들여다보는 학생들 눈은 흔들림이 없었고 지휘자 귀는 미세한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됐다. 연주 도중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가 나면 "도와 레 소리가 이상하다. '레'에 힘을 더 줘라" 같은 지적이 쏟아졌다. 이들은 11일 졸업식을 겸한 연주회 때 부모님들 앞에서 1년간 갈고닦은 실력을 뽐낼 생각에 연습에 몰두해 있었다.

계촌초교가 오케스트라를 운영한 건 1년밖에 안 된다. 하지만 그동안 학생들에게는 음악 실력 향상보다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3학년 찬휘(10)와 5학년 산(12)이는 산만한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지휘자가 손을 들면 바로 바이올린에 집중하는 능력을 얻었다. 우울증 증세를 보였던 3학년 은솔(10·가명)이는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결석도 밥 먹듯 했지만, 바이올린을 잡고부터 성격이 바뀌어 친구들과 잘 지내고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게 됐다.

8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초등학교 강당에서 이 학교 전교생 48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다가올 졸업식 연주회를 앞두고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등을 연습하고 있다./홍서표 기자
8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초등학교 강당에서 이 학교 전교생 48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다가올 졸업식 연주회를 앞두고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등을 연습하고 있다./홍서표 기자

무엇보다 놀라운 변화는 성적이었다. 계촌초교의 2008년 10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평균점수는 4학년 69.4점, 5학년 71.43점, 6학년 82.46점이었다. 1년 뒤 같은 평가 결과를 앞에 놓고 교사들은 눈을 의심했다. 4학년 87.2점, 5학년 81.33점, 6학년 89.41점으로 껑충 뛰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이경우 교사는 "오케스트라를 통해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고 더 적극적으로 바뀐 게 성적 향상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6학년들은 요즘 오케스트라를 떠나야 하는 걸 아쉬워한다. 정문기(13)군은 "졸업해도 형 바이올린을 물려받아 계속 연습할 것"이라 했고, 박소희(13)양은 "졸업하지 않고 학교에 남고 싶다"고 했다.

계촌 오케스트라는 작년 초 새 학기를 앞두고 교사들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폐교 위기로 치닫던 벽지 학교를 살리기 위한 비장의 카드였다. 바이올린·첼로·더블베이스 등 악기 구입에 필요한 1170만원은 학교 운영비를 줄여 마련했다.

악기는 구했지만 문제는 강사였다. 권오이 교장은 인근 원주시를 찾아, 원주쳄버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방과후 학교 강사를 제의했다. 원주에서 1시간 거리의 계촌초교까지 오기를 꺼리는 그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3명을 초빙하는 데 성공했다. 바이올린 연주자로 강릉시립교향악단 창단 멤버이기도 했던 권 교장도 실력이 처지는 학생들을 교장실로 불러 특별과외 하는 등 도왔다.

당초 계촌 오케스트라는 작년 10월쯤 성대한 연주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신종플루에 발목이 잡혀 뒤늦게 잡은 게 이번 졸업 연주회다.

권 교장은 "벽지 학교에서 무료로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이를 통해 성적도 향상된다면 학생이 다시 늘어날 것이란 믿음을 갖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초등학교 방과후 학교인 '계촌 오케스트라'가 운영 1년만에 학생들의 성적이 향상되고 인성 교육에도 도움이 되는 등 호평을 받고 있다. /홍서표 기자 hsp@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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