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을 밝혀라, 젊은 그대] [6] 무용수 겸 안무가 정영두

입력 : 2010.02.08 03:15   |   수정 : 2010.02.08 08:26

"춤은 한 편의 詩… 바로 당신의 이야기"
연기 잘하려 시작한 무용 이젠 팬들이 '영두님' 칭송
"테크닉만 추구하는 건 반대… 보는 이의 가슴에 맺힌 말
말없는 춤이 대신할때 감동"

현대무용《제7의 인간》연습 장면. / LG아트센터 제공
지난달 29일 한 무리의 춤꾼들이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 나타났다. 작년 12월 15일부터 하루 6시간씩 현대무용 《제7의 인간》을 준비해온 안무가 정영두(36)와 무용수 14명이 딱 하루 지하연습실을 벗어난 날이었다. 이들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대형으로 하늘을 나는 고니·물오리·가창오리의 움직임을 눈과 카메라에 담았다. 정영두는 "모였다 흩어지고 다시 무리 짓는 동물적 센스에 영감을 받았다"면서 "서울을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여정 자체가 우리에겐 '공부'였다"고 했다.

다음 달 서울 LG아트센터 개관 10주년 기념작으로 무대에 오르는 《제7의 인간》은 고향이나 나라, 가족이나 직장에서 떠나고 머물기를 강요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난 4일 LG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본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이동하는 철새들 같았다. 여럿이 모여 대형을 빚어냈고 바닥을 톡톡 치는 동작, 무거운 짐을 안고 가는 동작도 있었다. 중간중간 헬리콥터 소리가 차올랐다 소멸했다. 정영두는 "비행기는 수 세기 동안 날아온 새들의 길을 인간이 방해하는 셈"이라며 "헬리콥터 소리는 그런 권력에 대한 은유"라고 설명했다.

이 젊은 무용수 겸 안무가는 관성(慣性)에 저항한다. 답사와 스터디를 하면서 그는 움직임의 근거를 찾는다. 공연 장르 간 벽을 허물고 있다는 점에서 정영두는 새로운 예술가의 한 모델이다. 2007년에는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를 연출하더니 지난해엔 연극 《도살장의 시간》에 배우로 출연했다.

"나로서는 《제7의 인간》이 큰 싸움입니다. 새로운 제작 시스템을 경험한다는 점, 장인 정신을 시험한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그리고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정영두는 감성과 분석력을 함께 지닌 무용수 겸 안무가다. 그는“충분히 젖어 있을 때는 즉흥으로도 좋은 춤이 나온다”며“내 몸 자체가 무대”라고 했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정영두는 감성과 분석력을 함께 지닌 무용수 겸 안무가다. 그는“충분히 젖어 있을 때는 즉흥으로도 좋은 춤이 나온다”며“내 몸 자체가 무대”라고 했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정영두는 이번 작업을 '싸움'이라 표현했다. 문예진흥기금 지원 신청을 안 한다는 그는 "기금이 약(藥)인지 독(毒)인지 자기검열이 안 끝났다"고 했다. "내 작품을 어디선가는 부를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고, 지원금 신청해서 받으면 1년 안에 공연 올리며 살아가는 구조도 싫었습니다."

《제7의 인간》 오디션에 뽑힌 무용수들에게 정영두는 두 가지를 요청했다. 연습에 몰입할 수 있게 주변 정리를 하라는 것, 그리고 무대에서 뒷줄에 선다고 서운해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연습실에서 무용수들은 정영두를 '교감 선생님'이라 불렀다.

정영두는 연극 무대에 서다 연기를 더 잘하고 싶어 무용을 배웠다. 26세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입학한 그는 2004년 《내려오지 않기》로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에서 대상을 차지했고, '영두님'으로 칭송하는 팬들까지 거느리고 있다. 정영두의 춤은 무엇을 추구할까.

"기본적으로 테크닉(기술) 습득이 중요하지요. 그러나 테크닉이 지배하는 춤에는 반대합니다.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어요. 춤 너머의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무대, 시(詩)처럼 읽는 사람의 정서가 개입되는 춤이었으면 합니다."

그는 질문하고 분석한다. 《제7의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 키스 받고 싶은 곳을 물었고, 무용수들은 각자의 답을 무대에서 동작으로 보여준다. 정영두는 "무용은 추상적인 작업이라며 움직임의 구체적 근거를 따지지 않는 풍토도 바꾸고 싶다"고 했다.

그가 오는 5월 일본 교토아트센터에서 일본 무용수들을 데리고 공연할 현대무용의 제목은 《Between(사이)》이다. 정영두는 "무대에서도 간격은 내게 큰 숙제"라며 "서는 것과 앉는 것, 앉는 것과 눕는 것의 차이, 그 거리감을 근원적으로 들여다보고 싶다"고 했다. 6월에는 프랑스 국립미디어센터와 한국의 나비아트센터가 합작하는 무대에 초청됐고, 올 하반기에는 연극 《바다와 양산》으로 잘 알려진 일본 극작가 마쓰다 마사타카의 신작에 배우로 참여한다.

당신의 작품을 보고 우는 관객이 많다고 하자 정영두는 "내 작업은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못하는 사람들이 말 없는 춤에서 그것을 발견할 때 감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몸으로 느낀 감동은 쉽게 찾아오진 않지만 오래 머문다"고 했다.

▶《제7의 인간》은 3월 10~11일 서울 LG아트센터. (02)2005-0114
4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안무가 정영두씨가 독창적 안무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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