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ABC] 봄엔 잎사귀 물고 겨울엔 악기로 모닥불… 이런 '사계'를 봤나

입력 : 2010.02.04 02:31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안무 콘서트'

지난 2008년 독일 베를린의 공연장 라디알시스템 V. 옛 하수펌프장을 개조한 이 무대에 고음악 연주단체인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AKAMUS)'가 비발디의 《사계(四季)》를 연주하기 위해 올랐습니다. 출발부터 조금은 독특했습니다. 단원들은 푸른 잎사귀를 입에 물고 있고, 바이올린 독주를 맡은 미도리 자일러(Seiler)도 활 끝에 잎사귀를 끼우고 있었습니다.

《사계》는 계절마다 "봄이 왔다. 새들은 즐겁게 아침을 노래하고 시냇물은 부드럽게 속삭이며 흐른다"는 짧은 시(詩)에서 출발합니다. 이 공연은 첫 곡 〈봄〉의 1악장부터 무용수가 어깨 위에 독주자를 태우면서 조금씩 강도를 높여갔습니다. 가만히 서서 연주하기도 쉽지 않습니다만 자일러는 무용수의 어깨 위에서도 자연스럽게 독주를 소화해냈습니다.

무용수는 자일러를 번쩍 들어서 안는가 하면, 서로 짧은 입맞춤으로 붉은 실을 천천히 늘어뜨렸습니다. 단원들도 서로 붉은 실을 입에서 입으로 늘어뜨리고 무대는 천천히 '실의 바다'로 변했습니다. 단원들은 연주를 하면서 무대 위를 맨발로 어지럽게 걷거나 뛰어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마룻바닥 위에 누워서 합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눈 내리는 듯한 연출로《사계》가운데〈겨울〉을 연주
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 자일러(오른쪽)와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 음반사 하르모니아 문디 제공
눈 내리는 듯한 연출로《사계》가운데〈겨울〉을 연주 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 자일러(오른쪽)와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 음반사 하르모니아 문디 제공
이날 공연에는 무용과 음악을 결합한 '안무 콘서트(choreographic concert)'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보통 클래식 음악회에서는 연주 외에는 곡(曲) 소개도 좀처럼 하지 않을 정도로, 음악 이외의 모든 소리와 행동을 불순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파격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발디의 《사계》처럼 자연이나 인물·사건을 묘사하는 성격이 짙은 곡을 '표제음악'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무용과 연기를 통해서 본디 곡이 지니고 있던 표제음악의 성격을 되살려낸 것입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비발디를 표현한 셈입니다.

〈가을〉이 되면 단원들은 머리 위에 사과 하나씩을 올려놓고, 그 사과가 떨어지면 무용수는 수확이라도 하듯이 바구니에 담아냅니다. 사과를 한입 베어 문 무용수가 쓰러지자 여성 단원들이 키스 세례를 퍼붓고, 객석에서도 폭소가 터져 나옵니다. 겨울이 되면 모닥불을 피우듯, 램프 곁에 악보와 악기를 불쏘시개처럼 쌓아둡니다. 악기를 기관총처럼 쥐고서 돌리는 것까지 모든 행동이 연주를 하면서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이 무척 놀랍습니다.

자일러는 《사계》를 연주한 적이 없었습니다. 모든 연주자들이 선택하기에 자칫 진부한 틀에 박힌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이 곡을 되도록 새로운 방식으로 소개하고 싶었다는 바람을 털어놓습니다. '고전'은 변함없지만,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하루하루 달라지기에 매번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도 생겨납니다.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내한공연, 2월 17일 오후 8시 서울 LG아트센터, (02)2005-0114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