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의 巨匠에게 듣는다] "내 나이 100살… 아직도 작품으로 세상에 할 말 많아"

입력 : 2010.01.19 03:31

조각가 겸 화가 루이즈 부르주아
알 품은 암컷 거미… 대표작 '마망'
"기괴한 거미도 누군가에겐 어미 母性의 연약함·강인함 표현"
화가에서 조각가로 변신
"조각은 보고 만지며 느낄 수 있어 그림은 가질 수 없는 리얼리티"

조선일보는 창간 90주년을 맞아 특별기획으로 '세계 미술의 거장(巨匠)에게 듣는다'를 연재한다. 세계적인 거장에게서 예술에 대한 열정과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 그들의 삶에 대해 듣는 시리즈의 첫 번째 인물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화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99)다.

KBS 클래식FM PD 뉴욕 맨해튼 집에서 작업중인 조각가이자 화가인 루이즈 부르주아. /알렉산더 반 겔더 제공
1982년 세계적인 미술관 모마(MoMA)에서 여성 작가로는 처음 회고전을 가졌고,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던 그는 100세를 눈앞에 둔 올해도 세계 각국에서 10여개의 전시가 기다리고 있는 현역 작가다. 부르주아가 국내 언론과 인터뷰하기는 처음이다. 지난 9일 뉴욕 맨해튼에 있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집을 찾은 것은 겨울 해가 기울어 어둑해질 무렵이었다. 좁은 복도를 지나 응접실로 들어가자 휠체어에 앉은 부르주아가 보였다.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으니 앙상하지만 어머니에게서 느껴지는 온기(溫氣)가 전해졌다. 기자의 손을 잡은 부르주아는 "오, (손이) 차다"며 테이블에 놓인 코냑을 가리키며 권했다.

낡은 소파에는 부르주아가 막 끝낸 수채화가 물기를 머금고 올려져 있었다. 부르주아는 올해 한국 나이로 100세를 맞았지만 오전이면 거의 거르지 않고 2시간씩 작업을 하고 있다. 루이즈 부르주아 스튜디오 디렉터인 제리 고로보이씨는 "루이즈는 아직도 건강한 편"이라면서 "불면증 때문에 매일 컨디션이 다르지만 오전에는 대부분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부르주아가 불어와 영어를 섞어서 하는 말은 비교적 또렷하게 들렸다. 작업 테이블에는 물감이 묻어 있고 드로잉에 쓰는 지우개와 연필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벽에는 영국 작가인 데미언 허스트와 U2의 보노가 부르주아를 찾아와 함께 찍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건강 때문에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있는 부르주아는 "점심을 먹으면서 CNN을 본다"며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위한 것이고, 이것들을 작품에 반영한다"고 말했다.

부르주아의 응접실은 '살롱(salon)'으로 불리며 미술계를 비롯해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각가를 꿈꾸는 젊은 학생이 작품을 들고 와서 대가에게 보이기 위해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그의 살롱을 찾은 사람은 젊은 예술가뿐 아니라 명성을 얻은 앤터니 곰리를 비롯해 사진가 낸 골딘, 전위미술가 리처드 롱,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시 등이 있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설치된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마망(1999)〉. /잰스 프레데릭센 제공
덴마크 코펜하겐에 설치된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마망(1999)〉. /잰스 프레데릭센 제공

부르주아는 "살롱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면서 "살롱에 모인 사람들을 통해서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가들은 고립돼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서로 어려운 점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부르주아의 수많은 작품 중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의 하나가 거대한 거미를 형상화한 조각 작품 〈Maman(마망)〉이다. 거미의 형상이 기괴하면서도 압도적이지만 알을 품은 암컷의 모성(母性)이 또한 느껴지는 작품이다. 부르주아는 〈마망〉에 대해 "태피스트리를 수선하던 나의 어머니를 그린 것"이라면서 "어머니는 거미처럼 태피스트리를 실로 짜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가 병이 든 뒤 내가 어머니를 돌봐야 했다"면서 "마망은 (어머니의) 연약함과 강인함을 같이 보여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부르주아는 "어머니가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줬다"면서 "그러나 나는 가르침을 준 선생님들과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걸 배우길 좋아한다"고 말했다.

부르주아의 작품은 〈마망〉뿐 아니라 〈아버지 파괴〉등 부모와 어릴 적 기억을 다룬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는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전쟁(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떠나자 어머니가 몹시 불안해했다"면서 "어머니의 불안은 우리에게 전염됐고, 우리도 아버지를 따라 전쟁터를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선할 태피스트리를 모으기 위해 여행을 자주 떠났고 나는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을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부르주아는 "1932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버려진 것 같았다"면서 "아직도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부르주아는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을 배웠다. 어머니가 사망한 뒤 그림으로 눈을 돌렸지만 그의 작품에는 기하학이 바탕에 깔려 있다. 부르주아는 "기하학은 사람 관계와 달리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 깨지지 않는 법칙들이 있다. 기하학은 내게 구조에 대해 가르쳐줬고 나는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부르주아는 처음에 그림으로 시작했지만 프랑스 입체파인 페르낭 레제(1881~1955)에게 배우면서 조각에 눈을 떴다. 부르주아는 "조각은 창조자와 관람자의 경험이 동반돼야 한다. 당신은 조각 작품 주위를 걸어 다닐 수 있고 작품을 옮길 수도 있다. 조각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만질 수도 있다. 조각의 이런 점은 그림의 환상이 가질 수 없는 리얼리티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리석에서 입방체를 만들어낸 뒤 다시 공[球]을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조각에 쓰이는 재료는 그만의 고유한 생(life)이 있다"며 "나는 재료의 이런 저항과도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부르주아는 "아직도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고 말해야 할 것들이 많다"면서 "작품은 나를 편하게 해주고 나 자신을 깨닫게 해준다"고 말했다.

부르주아는 "예술가가 된 것은 축복이었다"면서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모든 기억이 내 작품 속에 녹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가가 표현하는 것은 진실해야 한다"면서 "자신이 원하고 느끼는 것을 표현할 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도 작품을 표현하는 방법이나 제작과정에서 사용하는 재료나 테크닉은 계속 변화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결국 예술은 인간의 감정에 관한 것이고, 이 점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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