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걸즈' 헨리 크리거, 여우주연 트로피보고 감동
우렁찬 박수 소리가 뉴욕 할렘 가의 아폴로씨어터를 가득 울렸다.
이제 막 뮤지컬 '드림걸즈'의 공연을 마친 미국 배우들은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듯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스탭들의 고함 소리와 배우들의 잡답 소리로 어수선한 백스테이지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들의 시선은 분장실에 들어선 한 동양인 여성에게 쏠려 있었다. "한국의 에피가 나타났다"며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
흑인 배우들이 한국의 뮤지컬 배우 홍지민을 둘러싸고 악수를 청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홍지민은 "내 생애 가장 찌릿한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홍지민의 'Dream comes true'
뮤지컬 '드림걸즈'는 1981년 미국에서 초연됐다. 2006년 비욘세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면서 전세계적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오디뮤지컬컴퍼니의 신춘상 대표가 미국 측에 '드림걸즈'의 뮤지컬 재공연을 제안했고, 지난해 한국 제작진과 배우들의 힘으로 세계 초연됐다. 주인공 에피 역은 홍지민에게 돌아갔다. 홍지민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지난해 10월 제15회 한국뮤지컬대상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배우 데뷔 14년 만에 처음 받아보는 상이었다.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꼭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드림걸즈'의 작곡가 헨리 크리거다. '드림걸즈'를 준비하며 벽에 부딪혔을 때 헨리 크리거는 "내가 본 에피 중에서 네가 가장 사랑스럽다"며 홍지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홍지민은 지난 11월 미국을 방문해 그를 만났다. 가방 속에서 트로피를 꺼내 보여줬을 때 헨리 크리거는 "이 무거운 걸 여기까지 들고 왔냐"며 반가워했다.
홍지민은 "할아버지(그녀는 헨리 크리거를 이렇게 불렀다)가 제 트로피를 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까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한-미 '에피'의 만남
홍지민은 미국 방문 기간 동안 한국에서 태평양을 건너온 '드림걸즈'의 뉴욕 공연을 감상했다. "공연 내내 무대 위로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다 끝나고 분장실에 갔더니 미국 배우분들이 절 알아보더라고요. 무척 당황스러웠죠. 알고 보니 한국 공연 실황 비디오를 보면서 미국 배우들이 연습을 했다고 하더군요."
뉴욕 공연에서 에피 역할을 맡은 모야 안젤라와도 인사를 나눴다. "자부심도 느껴지고 찌릿찌릿했어요. 한국 공연 때 제가 제 정서대로 만들어놓은 동선이나 안무까지 미국 에피가 똑같이 하더라고요. 즐겁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죠."
홍지민은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고 싶은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사실 이전까지 아시아 배우가 브로드웨이에 설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았죠. '미스 사이공'이나 '왕과 나' 정도였으니까. 언어적인 문제도 크고. 하지만 이번에 '드림걸즈'를 보면서 막연하지만 '나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림걸즈' 공연 이후 3개월을 쉬었다. "배우 데뷔 이후 이렇게 오래 쉬어보긴 처음"이란다.
다음달 6일부터 새 뮤지컬 '메노포즈'에 들어간다. 갱년기 여성과 엄마들의 고민을 어둡지 않은 유쾌함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2010년엔 이 작품을 무사히 잘 해내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앵콜 공연마다 반응이 뜨거웠고, 이번엔 캐스팅도 좋답니다. 나이를 먹을 수록 느낌이 달라질 것 같아요. 평생 하고 싶은 작품이에요." '메노포즈'엔 가수 혜은이와 개그우먼 이영자 김숙이 함께 출연한다.
방송 활동도 계속될 전망이다. 드라마 '스타일'(SBS)과 '온에어'(MBC), 시트콤 '태희혜교지현이'(MBC) 등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온 홍지민은 "올해도 드라마 두 편 정도에 출연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홍지민은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며 "뮤지컬 배우들이 힘을 모아 자선 기부 콘서트 같은 걸 하고 싶다"고 신년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