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1.07 04:30
연극 '둥둥 낙랑둥'
'그리다'라는 동사에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생각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국립극단의 《둥둥 낙랑 둥》(최인훈 작·최치림 연출)은 그 그리움의 힘으로 불을 때고 밥을 지어야 하는 연극이다. 자명고를 찢고 죽은 낙랑공주(계미경)의 환영이 호동왕자(이상직) 앞에 나타나 "그대는 나를 묻으셨소? 정녕 그러시오?"라고 물을 때부터 이 작품은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를 붙들어 매겠다는 열망을 고백한다. 죽어 잊기도 어렵고, 살아 그리기도 어렵다.
무대는 한 판 굿으로 여닫힌다. 공주와 왕자의 영혼을 불러내 응어리를 풀어주는 형식이다. 찢긴 건 자명고가 아니라 호동의 마음이다. 최인훈의 희곡은 낙랑을 점령한 왕자가 우울증에 빠졌으니 '이기고도 졌다'는 점을 문학적으로 강조한다. 대사는 아름답고 겹겹의 구조는 힘이 있다.
그러나 연극은 원작을 넘어서지 못했다. 불안한 눈빛의 왕자 이상직, 낙랑공주와 왕비를 왕복한 계미경, 꼽추 이혜경 등이 인상적인 순간을 빚어냈지만 전체적으로 연기는 거칠고 헐거웠다. 관객을 집중시키는 밀도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대사가 관객에게 들리지 않는 배우들도 여럿 있었다. 왕의 나른한 졸음, 비가 쏟아지는 엔딩 등 몇몇 장면에서는 좋은 그림을 보여줬지만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혼돈을 시각화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드라마를 따라가는 재미는 있었다. 죽은 낙랑공주의 쌍둥이 언니가 호동왕자의 의붓어미라는 설정 때문이다. 낙랑이 무너질 때 슬퍼한 그녀는 호동왕자에게 마음을 열고 동생을 흉내 내면서 낙랑공주를 환생시킨다.
현실과 환상에 대한 한국적 해석을 가다듬고 그리움의 에너지를 높이는 게 《둥둥 낙랑 둥》의 남은 과제다. 이 연극은 국가브랜드 공연으로 오는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씨어터올림픽에 출품된다.
▶1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