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사색과 관극의 즐거움

입력 : 2009.12.29 10:15

연극 '베니스의 상인'

연극을 만드는 입장에서 '베니스의 상인'을 살펴보면, 세인의 관심을 끄는 재판정 장면이 반드시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베니스의 상인'의 재판정 장면은 끝부분에 위치한다. 반면 재판정 장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상황을 무수히 넘겨야 한다. 왜 밧사니오가 돈을 빌려야 했는지, 왜 안토니오가 보증을 서야 했는지, 왜 샤일록은 그토록 안토니오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파악해야 하며, 내용 이해를 위해 당시의 이탈리아의 정세나,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뿌리 깊은 반목도 알아두어야 한다(연출자는 요령 있게 설명해야 한다).

또한 이 작품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역할의 비중이 상당히 분산되어 있어 유연하게 처리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주인공 격인 샤일록과 포샤,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는 밧사니오, 밧사니오의 친구로서 빚보증을 서게 되는 안토니오, 샤일록의 딸 제시카과 그녀를 사랑하는 로렌조, 이밖에도 포샤에게 청혼하는 구혼자들과 시종 네리샤. 얽히고설킨 이들의 사연이 재판정 장면 이전까지 길게 전개되는데, 재판정 장면만을 고대하는 이들이라면 이 과정에서 자칫하면 극의 흥미를 잃기 십상이다.

이윤택은 이러한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서 몇 가지 공연 전략을 수립한 것 같다. 우선, 안무가 케이트 플랫에게 신체연기 훈련을 맡겨, 셰익스피어 극의 원형에 적합한 배우들의 움직임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윤택은 현재 대학로에서 자신이 만든 '햄릿'이 호평을 받는 이유로, 케이트 플랫의 신체훈련을 꼽고 있다. 그만큼 그녀의 합류는 셰익스피어를 더욱 셰익스피어답게 만드는 힘이 될 전망이다.

다음은 몹신의 창출과 앙상블 연기다. '베니스의 상인' 연습 광경을 지켜보니, ‘코러스’라고 부를 수 있는 집단 연기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희단거리패를 중심으로 한 젊은 배우들은, 무대를 전환하고 분위기를 고조시켜야 하는 대목에서 역동적인 몸동작을 선보일 것이다. 사변의 언어로 셰익스피어를 한정하지 않겠다는 연출가의 의도를 강하게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막 전환이 빈번하다. 샤일록이 있는 베니스라는 공간과 포샤가 남편감을 고르는 공간 사이의 전환은, 영화로 따지면 교차편집(cross cutting)에 해당한다. 두 공간은 무대에서 번갈아 재현되어야 하는데, 그 때마다 ‘블랙 암전’으로 장면의 분위기를 단절·훼손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이윤택은 이러한 막 전환 사이에 막간극, 무용적인 동작을 곁들인 춤, 코메디아 델 아르테 풍의 소극 연기, 몇 명의 어릿광대들이 보이는 ‘크라운’ 연기, 그리고 코러스가 동원된 몹신을 삽입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코러스의 등장은 재판정 장면에서도 그 효과를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다.

이 밖에도 음악의 사용이 유달리 눈에 띈다. 이윤택의 최근 연극을 보면, 음악을 정교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극중 연주뿐 아니라 극의 리듬을 조율하는 매개체로서 음악 비중을 높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장중한 대사와 절도 있는 연기를 잊지 않으면서도, 춤과 노래와 음악 그리고 코러스 연기가 곁들인 공연을 조율할 수 있다면, ‘셰익스피어의 깊은 사색’과 ‘대중이 함께 할 수 있는 유쾌함’을 아우르는 공연이 될 것이다. 오랜만에 단정하면서도 발랄한 '베니스의 상인'을 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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