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의 안중근 역 류정한·정성화
삶에 대해 숙고하게 돼… 아이부터 넥타이부대까지 이렇게 다양한 관객 처음
"친척들이 몇 분 오시냐에 따라 '내가 잘하고 있다, 아니다'를 알 수 있습니다. 공연이 좋으면 아버지께서 친척분들을 부르시거든요. 이번엔 엄청 오셨지요. 어머니 친목계, 수영장 동호회…."(정성화)
100년 전 안중근을 무대로 불러내는 뮤지컬 《영웅》(연출 윤호진)에서 안중근 역을 나눠 맡은 배우 류정한(38)과 정성화(34)는 "관객과 호흡하면서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완성해가고 있는데 반응이 뜨거워 뿌듯하다"고 말했다. 두 배우를 14일 오전 LG아트센터 분장실에서 만났다.
콧수염을 기르고 있는 류정한은 "안중근을 연기하면서 나 스스로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창작 뮤지컬은 처음이라 불안하고 답답했는데 이 뮤지컬이 '사람'을 만들어준 셈이지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엇이 진실한 삶인지 숙고하게 됐습니다."
《영웅》은 자작나무숲에서 안중근과 동지들이 부르는 합창 〈단지동맹〉으로 열린다. "우리의 함성이 잠자는 숲을 깨우듯/ 어두운 이 세상 깨우리…." 안중근의 절망과 다짐, 그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여인, 귓바퀴에 맴도는 총성, 저격의 이유를 밝히는 법정, 푸른 죽음…. 이 뮤지컬은 마술 같은 기차, 격정적인 멜로디, 조명·춤·영상으로 빚어낸 추격 장면 등으로 호평받고 있다.
"정한이 형은 목소리가 고급스러워요. 관객이 노랫말을 잘 흡수할 수 있게 하는 솜씨가 부럽습니다. 감정 이입도 쉽고 연기가 섬세해요."(정성화)
"성화는 역시 연기를 잘하고 노래도 훌륭해요. '안중근처럼 진지한 인물을 견딜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잠재웠습니다. 꼭 맞는 옷을 제대로 입은 것 같아요."(류정한)
두 배우는 서로 이렇게 후한 점수를 줬다. 흠을 잡아 달라고 했더니 정성화가 껄껄 웃었다. "정한이 형은 '아이고 죽겠다'며 노래를 부르는데 정작 공연을 보면 '세상에 저럴 수가!'가 됩니다. 엄살이지요." 그러자 류정한은 "성화는 건강을 자신하기 때문인지 음주가 잦다. 관리가 필요하다"고 폭로했다.
1막은 마지막 곡 〈그날을 기약하며〉를 부를 때, 2막은 하얼빈역 저격 장면에서 객석 반응이 좋다고 했다. 정성화는 "이토를 저격하는 순간 객석에서 박수가 터지고 '대한독립 만세'를 따라 외치는 관객도 있어서 처음엔 의아했다"고 말했다. 류정한은 "일제시대를 겪은 사람은 젊은 세대와는 다른 감정에 휩싸였을 것"이라고 했다.
류정한과 정성화는 《영웅》에 이어 내년 1~2월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번갈아 돈키호테를 연기한다. 1월 14~17일 경기도 고양아람누리, 22일부터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정성화는 "요즘 우리는 '패키지'"라며 웃었다. 신을 모독한 죄로 감옥에 갇힌 작가 겸 배우 세르반테스가 자신에게 익숙한 형태의 변론을 요청하고, 죄수들을 뽑아 즉흥극을 벌이는 이야기다. 극중극에서 스스로 돈키호테라고 주장하는 노인은 창녀 알돈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풍차에 창을 겨누고 알돈자의 걸레에서 향기를 맡는 돈키호테의 착각이 싫지 않은 뮤지컬이다.
주인공이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정진한다는 점에서 《맨 오브 라만차》는 《영웅》과도 통한다. 정성화는 "관객의 기립박수를 만나면서 '배우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절실히 느꼈고 감동받았다"고 했다. 류정한은 "《영웅》의 앙상블은 최고다. 앙상블 배우들이 젊고 경험이 부족한데 추격 장면 등을 멋지게 빚어내는 것을 보면서 놀랐다"고 말했다.
▶《영웅》은 31일까지 LG아트센터. 1588-7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