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는 괴로워"

입력 : 2009.12.03 06:23   |   수정 : 2009.12.03 10:36

'로잔의 여왕' 스무살 박세은
국립발레단 사상 최연소 '백조의 호수' 주역 맡아
"날갯짓 하랴, 발길질 하랴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
힘좋은 왕자 있어 다행"

"우아한 백조요? 무용수는 팔이 떨어져 나가요. 계속 날갯짓을 하잖아요. 발끝도 잘게 움직여야 하고. 2막은 힘을 제대로 써야 하는 테크닉(기술)에 표현력도 깊어야 하니…."

스무 살의 발레리나 박세은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는 9~13일 예술의전당에 올리는 《백조의 호수》에서 여주인공 오데트·오딜이 된다.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안무한 국립발레단의 이 클래식 발레 사상 최연소 주역이다. 박세은은 "굉장히 큰 기회라서 설레지만 두렵기도 하다"고 했다. 《백조의 호수》는 마법에 걸려 밤에만 사람으로 변하는 백조 오데트와 지그프리트 왕자의 숭고한 사랑 이야기다. 오데트도 왕자를 처음 본 순간 공포를 경험한다. 박세은은 "백조~공주~백조~공주의 삶이 일상으로 굳어져 왕자를 보고 겁을 내지만 그가 손을 잡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린다"며 "사랑이라는 감정도 절반은 두려움인 것 같다"고 했다.

박세은은 지난달 국립발레단의 《왕자 호동》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발레단 홈페이지에는 "애절하면서 당찼다" "단단하고 아름다운 성장" 같은 호평이 쏟아졌다. 박세은은 "언니들(김주원·김지영) 춤을 '커닝'하다 공연 1주일 전에 '이렇게 묻어가면 안 된다' 싶어 음악 들으며 내 색깔을 내려고 했다"며 "관객들의 호응은 (파트너) 이영철 오빠가 차분하게 나를 이끌어준 덕"이라고 했다.

발레《백조의 호수》에서‘백조(오른쪽)’오데트와‘흑조’오딜. 180도 다른 두 배역을 연기해야 하는 박세은./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발레《백조의 호수》에서‘백조(오른쪽)’오데트와‘흑조’오딜. 180도 다른 두 배역을 연기해야 하는 박세은./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차이콥스키의 음악으로도 친숙한 《백조의 호수》에는 고전 발레의 화려함과 낭만 발레의 신비가 공존한다. 24마리 백조의 밀도 높은 군무(群舞), 한 몸으로 출렁이는 4마리 백조의 춤, 2막의 디베르티스망(다채롭게 삽입된 춤)도 볼거리로 꼽힌다. 여주인공은 슬픔을 머금은 오데트(흰색)와 요염한 오딜(검은색) 사이를 부드럽게 왕복해야 한다. 흰색은 가볍고 순수하지만 약하고, 검은색은 무겁고 독재적이지만 섹시하다. 박세은은 백조(白鳥) 오데트에 대해 "섬세함으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고 음악을 잘 타야 한다"고 말했다. 흑조(黑鳥) 오딜에 대해서는 "춤이 굉장히 어렵지만 테크닉에 집중해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에서 파트너는 올해 모스크바발레콩쿠르에서 은상을 차지한 김기민(17)이다. 박세은은 그를 '힘이 좋고 파트너를 잡는 센스가 빼어난 왕자'라고 했다. "기민이는 여자의 중심을 잘 알고 기억하는 재주가 있어요. 생각도 깊어 좋아하는 후배예요."

《백조의 호수》 그랑 파드되(남녀 솔로와 두 2인무의 조합)만 추었을 뿐 전막(全幕) 공연은 처음이라는 박세은은 "숨 고르기도 전에 흑조 그랑 파드되를 춰야 하는 2막3장이 어렵고, 오데트가 슬픔으로 무너져내리는 2막2장의 춤이 가장 좋다"고 했다. 그는 형식과 절제미를 강조하는 클래식 발레보다 《왕자 호동》 같은 드라마 발레가 "마음대로 출 수 있어서" 더 끌린다고 했다.

2007년 스위스 로잔발레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했던 박세은은 "내용과 음악을 잘 이해하고 상상하면 어느 순간 춤이 나온다"고 했다. "열망했던 감정이 몸에 고일 땐 저릿해요. 손끝, 발끝, 머리끝까지 날 움직이게 하지요. 그 순간만큼은 '진짜'인 것 같아요."

▶9~1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김지영·박세은·박슬기·김주원·김리회·고혜주가 오데트·오딜로 춤춘다. (02)580-1300


 

오는 9~13일 예술의전당에 올리는 '백조의 호수'에서 여주인공 오데트.오딜로 열연하는 발레리나 박세은(20.국립발레단)양을 만났다 / 오종찬 기자ojc1979@chosun.com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