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들이 뽑은 '2009년 최고의 연극' 두 편

입력 : 2009.11.26 03:12

시간이 藥이다…
하얀 앵두, 만겁 세월 앞에 무뎌지는 갈등
환상은 毒이다…
페르 귄트, 놀이터 같은 세상… 유희와 추락

유희적 상상력을 양식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은
《페르 귄트》./LG아트센터 제공
한 해에 연극을 100편 넘게 보는 연극전문가들은 극단 여행자가 LG아트센터에 올린 《페르 귄트(Peer Gynt)》(연출 양정웅)와 두산아트센터가 제작한 《하얀 앵두》(배삼식 작·김동현 연출)를 '2009년의 연극'으로 꼽았다. 올해 최고의 배우는 서울시립극단의 《다윈의 거북이》(연출 김동현)에서 주인공 '거북이'를 연기한 강애심이었다.

본지가 연극평론가 8명과 공연잡지 편집장 2명 등 1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올해의 연극 베스트 3'를 묻는 질문에 《페르 귄트》와 《하얀 앵두》가 각각 4표, 극단 골목길의 《너무 놀라지 마라》(박근형 작·연출)와 《다윈의 거북이》가 3표씩을 받아 올해의 수확으로 기록됐다.

입센의 희곡 《페르 귄트》는 담요를 뒤집어쓴 페르 귄트(정해균)와 가난한 홀어머니(김은희), 세발자전거를 보여주며 열린다. "하늘을 날 수 있고, 장차 왕이 되겠다"는 페르의 공상과 여행, 충격적인 추락을 따라간다. 양정웅 연출은 거대한 거울을 배경으로 놀이터처럼 꾸며 놓은 무대에 이집트 정신병원, 비행기 추락, 쇼핑 카트의 행렬 등을 밀어 넣으며 원작을 재해석했다. 평론가 김방옥은 "양정웅이 만든 이미지들이 극적 완성도가 있고 대극장에서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고 평했다.

 

인연에 대한 과학적 시선과 배우 앙상블이 좋았던《하얀 앵두》. 왼쪽부터 이연규·조영진·민복기·주인영./두산아트센터 제공
인연에 대한 과학적 시선과 배우 앙상블이 좋았던《하얀 앵두》. 왼쪽부터 이연규·조영진·민복기·주인영./두산아트센터 제공
망설임은 둥글다. 《하얀 앵두》는 인물과 인물의 정면충돌, 균열과 결핍을 뇌관으로 연쇄폭발한다. 무대는 사각형이 아니라 원형 마당이다. 직선적이었던 갈등들은 억만 겁 시간 앞에서 초라하게 구부러진다. 지질학자가 '삼엽충 시계' 이야기를 꺼내며 출발하는 이 연극은 시간의 힘으로 단단하게 뭉쳐진 창작극이었다. 과학 주변에서 서성이지 않고 인간의 본질로 직행한 것도 좋았다. "인연과 순환적 시간관이라는 주제를 재미있게 형상화해낸 연극"(김성희)이라는 평이다.

《너무 놀라지 마라》는 판타지를 추구하는 영화감독(김영필)과 현실에 뿌리 박은 아내(장영남) 사이의 투쟁이다. 평론가 김윤철은 "박근형 연극 가운데 상당한 형식미를 갖춰 국제적 무대언어로도 손색이 없다"고 평했다. 다윈이 남미 갈라파고스섬에서 가져온 거북이 헤리엇을 통해 인간의 퇴행을 풍자한 《다윈의 거북이》는 "과학을 이야기하면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철학적으로 성찰했다"(김미도)는 평이다. 이 밖에 오현경의 아버지 연기와 시적 감성이 돋보이는 《봄날》(연출 이성열), 강력한 화법으로 연극의 죽음을 노래한 《도살장의 시간》(연출 한태숙)이 각각 2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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