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렘의 전설에 선 '드림걸즈'

입력 : 2009.11.24 02:11

뉴욕 아폴로극장서 리바이벌 공연… 흑인의 혼·리듬감 더해져

관객은 일제히 기립했다. LED 패널에 'Apollo(아폴로)'라는 문자를 띄우며 열린 무대가 마지막 곡 〈드림걸즈(Dream girls)〉로 닫힐 때였다. 1500석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은 긴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한·미 합작으로 올 초 서울에서 출발한 뮤지컬 《드림걸즈》 리바이벌 공연이 세계 공연 1번지 뉴욕에서 받은 첫 반응이었다.

《드림걸즈》가 22일 저녁(현지시각) 뉴욕 할렘의 아폴로 극장에서 미국 투어의 막을 올렸다. 1934년 문을 연 뒤 빌리 할리데이, 제임스 브라운, 마이클 잭슨 등 흑인 가수들이 거쳐간 아폴로 극장은 '할렘의 전설'이다. 《드림걸즈》는 1막의 첫 장면이 1960년대 아폴로 극장의 아마추어 경연이라, 이 작품으로선 더 뜻깊은 뉴욕 데뷔였다. 뉴욕타임스는 "판타지와 현실이 뒤섞이는 순간"이라고 썼다.

미국 뉴욕 아폴로 극장에서 역사적인 리바이벌 무대를 가진 뮤지컬《드림걸즈》. 오른쪽이 여성 3인조 그룹‘드림스’이고, 왼쪽 남자는 지미다./오디뮤지컬컴퍼니 제공
미국 뉴욕 아폴로 극장에서 역사적인 리바이벌 무대를 가진 뮤지컬《드림걸즈》. 오른쪽이 여성 3인조 그룹‘드림스’이고, 왼쪽 남자는 지미다./오디뮤지컬컴퍼니 제공
'The Musical Sensation Live on Stage(무대에서 꿈틀대는 음악적 흥분)!' 뉴욕으로 날아온 《드림걸즈》의 홍보카피다. 이 뮤지컬은 매니저 커티스에게 발탁된 세 흑인 소녀 에피·디나·로렐이 어둡고 차가운 쇼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가수의 꿈을 이루는 과정을 따라가며 음악 자체로 승부했다. 배우와 언어만 달라졌을 뿐 의상·가발·세트 등은 한국에서 본 그대로였다. 무대가 좀 좁아졌지만, 전후좌우로 움직이고 회전하는 LED 패널 5개는 100여개의 이미지를 쏟아내며 공간을 수축·팽창시켰다.

흑인의 혼과 리듬감이 더해진 음악의 맛은 한국과 달랐다. 멜로디와 가사 사이에 틈이 없어 자연스러웠고, 노래와 춤도 더 끈끈한 점성으로 뭉쳐 있었다. 에피 역을 맡은 모야 안젤라는 강력한 에너지와 성량·호흡을 보여주며 큰 호응을 받았다.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인 시에사 머카도(디나)의 노래와 춤도 매끄러웠다. 이들을 이용하다 버리는 커티스도 한국에서보다 인물이 입체적이라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드림걸즈》 리바이벌 공연은 한국의 오디뮤지컬컴퍼니가 《드림걸즈》 브로드웨이 초연(1981년)의 작곡가 헨리 크리거, 《프로듀서스》 무대디자이너 로빈 와그너, 《헤어스프레이》 의상을 맡았던 윌리엄 어비 롱 등을 데려와 한국에서 먼저 공개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번 미국 투어는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존 브릴리오가 현지 투자자와 배우들을 모아 성사시켰다.

앙상블 14명이 007 가방과 CD를 주고받으며 춤·음악·영상이 한 호흡으로 어울리는 장면, 버림받은 에피가 1막의 마지막 곡 〈앤 아임 텔링 유 아임 낫 고잉(And I'm telling you I'm not going)〉을 부르는 장면 등의 폭발력은 한국에서와 같았다. 2막에서 에피와 디나가 오랜 불화를 끝내는 노래 〈리슨(Listen)〉에도 뜨거운 환호성이 쏟아졌다.

《드림걸즈》는 이미 서울에서 6개월간 19만 관객을 모았고, 지난달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베스트외국뮤지컬상·여우주연상·무대미술상 등 5개의 트로피를 차지했다. 오디뮤지컬컴퍼니 신춘수 대표는 미국 투어에도 투자했고 로열티를 받게 된다. 신 대표는 "한국 뮤지컬 시장의 잠재력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며 "창작 뮤지컬로 세계 무대를 노크하기 전에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2월 12일까지 아폴로 극장에 서는 《드림걸즈》는 내년에 시카고·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주요 도시들을 순회한다. 일본 도쿄 공연도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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