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첼로의 열정과 절제… 사제(師弟)간 주고받은 무언의 대화

입력 : 2009.11.23 06:09

마이스키·장한나 독주회

스승은 첼로가 지니고 있는 온기(溫氣)에 대해 물었고, 제자는 거꾸로 첼로가 얼마나 사려 깊을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지난 20~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달아 열린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Mischa Maisky)와 장한나의 독주회는 마치 첼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제(師弟) 간에 진행된 문답과도 같았다. 마이스키는 장한나가 10세 때부터 사사한 첼로 스승이다.

리사이틀의 열기는 스승 쪽이 훨씬 뜨거웠다. 20일 독주회에서 마이스키는 마누엘 데 파야의 〈스페인 민요 모음곡〉과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 D단조로 문을 열며, 남부 유럽의 햇살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였다. 스페인 민요에 바탕을 둔 모음곡에서 마이스키는 현(絃)과 활이 맞닿기 전부터 양손을 서서히 허공에 그리며 리듬을 탔고, 곡이 격정으로 치달으면 어김없이 두 발로 무대를 밟으며 '온몸 연주'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20~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사제 간의‘첼로 이어달리기’무대가 됐다. 20일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딸인 피아니스트 릴리와 함께 독주회를 가진 데 이어(사진 위), 21일에는 제자 장한나가 바통을 이어받아 첼로 리사이틀을 열었다./빈체로·PMG코리아 제공
지난 20~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사제 간의‘첼로 이어달리기’무대가 됐다. 20일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딸인 피아니스트 릴리와 함께 독주회를 가진 데 이어(사진 위), 21일에는 제자 장한나가 바통을 이어받아 첼로 리사이틀을 열었다./빈체로·PMG코리아 제공
2부에서 마이스키는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와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소나타 D단조 등 러시아 작품들로 채우며 남부 유럽에서 북구(北歐)로 음악적 위도를 높였다. 짙은 음울함 속에도 애절한 감상(라흐마니노프)이나 의뭉스럽고 능청스럽기까지 한 위트(쇼스타코비치)가 녹아 있는 러시아 음악의 매력을 명징한 고음과 풍부한 저음으로 고루 살렸다.

현을 누르는 왼손이 처연하게 노래할 때조차 활을 든 오른손은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 마이스키의 첼로는 감상적이면서도 격조를 잃지 않는다. 마이스키와 즐겨 호흡을 맞추는 단짝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정면으로 맞부딪치며 폭발력을 배가하는 것과 달리, 이날 반주자인 딸 릴리는 차분하게 피아노로 아버지의 첼로를 따라갔다.

다음날 무대를 이어받은 장한나는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2번을 골랐다. 스승이 열정을 터뜨릴 때 제자는 한가득 머금는 쪽이었고, 스승이 모든 걸 펼쳐보일 때 제자는 가지런히 모으는 편을 택했다. 첼로에 이어 지휘까지 평생의 화두가 되고 있는 브람스에 접근하면서 장한나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기나긴 탐색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전날 고양아람누리 연주회 도중 첼로 줄이 끊어진 여파로 인한 '안전 운행'이기도 했다.

바로크 무곡(舞曲)의 흥이 깃들어 있는 소나타 1번 2악장에서도 장한나의 활은 쉽게 달뜨지 않았고, 소나타 2번에서도 여운이 긴 저음으로 과장을 줄이는 대신 여백을 넉넉하게 품었다. 피아니스트 피닌 콜린즈는 브람스 소나타에서 피아노가 '반주'가 아니라 또 하나의 '독주'라는 점을 보여주듯, 동등한 동반자 역할을 자임했다.



▶미샤 마이스키, 하이든 필하모닉 협연: 25일 오후 8시 고양아람누리,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02)599-5743

▶장한나 첼로 리사이틀: 12월 5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예술의전당, (02)74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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