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도 보고 역사도 배운다.'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공연이 줄을 잇고 있다. 우리 역사의 흐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과 역사의 거센 풍랑을 온몸으로 헤쳐나간 인물을 재조명하는 작품들이다.
현재 공연 중인 사극 공연은 뮤지컬 '영웅'과 '남한산성', 연극 '윤이상, 나비 이마주'가 대표적이다. 뮤지컬 '명성황후'도 지방공연을 거쳐 이달 말부터 서울에서 재공연된다. '영웅'은 안중근 의사,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의 오달제, '명성황후'는 명성황후, '윤이상, 나비 이마주'는 현대음악가 윤이상의 삶을 그리고 있다. 또 일본인의 시각으로 안중근을 바라보는 연극 '겨울꽃'도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들은 16세기 중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400년의 세월을 넘나든다. 인물로는 조선 12대왕 인조부터 현대 음악가 윤이상까지 아우른다. 관객들은 공연을 통해 그동안 잘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나 실존인물의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공연의 즐거움과 배움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일석이조 작품들이다. 역사나 실존인물의 삶을 형상화한 작품이 요즘처럼 동시에 공연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안중근, 윤이상, 명성황후, 오달제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인물들이다. 나라를 위한 충성심과 뜨거운 예술혼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안중근은 100년 전 하얼빈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명성황후 역시 조선의 자존을 지키려다 일본 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오달제는 원나라의 침공에 맞서 저항했던 삼학사의 한 명이다. 가장 최근 인물인 윤이상은 1970, 80년대 남북 분단의 엄혹한 시대상황 속에서 간첩 혐의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예술혼을 지켜냈던 세계적인 음악가이다.
▶뮤지컬 '영웅'=뮤지컬 '명성황후'의 연출자 윤호진 에이콤 대표가 3년간 37억원을 들여 제작한 대형 창작 뮤지컬이다. 안중근의 마지막 1년간의 행적과 인간적인 고뇌를 그린다. 회령 전투에서 패하고 번민하다 단지동맹으로 마음을 다잡은 후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의인, '동양평화론' 등을 집필하며 세계평화와 조국의 미래를 걱정한 사상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위대한 영웅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어머니가 보내온 수의를 입은 안중근이 '장부가'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이다. 또 달리는 기차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장면과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하얼빈역 저격 장면도 돋보인다. 사전 예약만 2만5000장이나 됐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연출자 윤호진은 "안 의사는 독립투사를 넘어서 동양평화론을 주창한 사상가였다.
'영웅'을 통해 왜 우리에게 나라가 필요한지, 후손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2월 31일까지, LG아트센터.
▶연극 '겨울꽃'= 일본 작가 가네시타 다쓰오의 작품. 안중근의 영혼에 초점을 맞춰 일본인들이 안중근의 고결한 정신에 동화돼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윤석화가 연출, 안중근의 부인 등 1인2역을 맡는다. 4일부터, 대학로 청운예술극장.
▶뮤지컬 '남한산성'=김 훈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피신했던 인조와 최명길, 김상헌 등 신하들의 이야기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라는 카피에서 알 수 있듯이, 항복을 둘러싸고 명분과 실리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의 갈등을 다룬다. 400여년 전 시대의 아픔과 고뇌를 현대적인 감각과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29세의 젊은 선비 오달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오달제를 가슴에 품고 사는 지고지순한 여인으로 기생 매향을 설정해 멜로라인을 살렸다.
느와르 영화처럼 콘트라스트가 강한 무대, 현대적이고 세련된 의상, 스펙터클한 특수효과 등이 매력적이다. 성남아트센터가 3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제작했다. 4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연극 '윤이상, 나비 이마주'=현대음악의 거장 윤이상의 삶과 예술혼이 연극으로 부활했다. 윤이상은 생존 당시 '현존하는 유럽의 5대 작곡가'로 선정될 만큼 뛰어난 음악가였지만, 우리 현대사의 질곡인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희생자이기도 했다. 연극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음악공부, 불혹의 나이에 부인과 두 자녀를 남기고 떠난 유럽 유학, 분단으로 인한 상처,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등 파란만장한 삶을 무대에 펼쳐놓는다. '고풍의상', 'image', '나비의 미망인', '첼로 협주곡' 등 윤이상의 음악도 함께 들을 수 있다.
극작가 홍창수는 "윤이상은 동양과 서양, 남북한 이데올로기 등 모든 경계를 넘어선 예술가였다. 그의 극적인 삶과 음악을 통해 우리 시대 경계의 벽을 허물어보고자 한다"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8일까지, 대학로 엘림홀.
▶뮤지컬 '명성황후'=1995년 초연된 후 매년 완성도를 높여 재공연되면서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창작 뮤지컬의 대표작. 이문열의 소설 '여우사냥'이 원작이다. 마지막 장면인 '백성이여 일어나라'가 나타내듯 민족주의적 메시지가 강하다.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도 공연했다. 28일부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