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지켜준 보물

입력 : 2009.11.18 06:14

두 번이나 火魔 비켜간 '겸재 정선 화첩'… 위기의 순간, 극적으로 살아남은 명작들

불후의 명작(名作)엔 불멸의 생명력이 있는 것일까? 지난 2006년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극적으로 반환된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 화첩에 얽힌 일화가 공개됐다. 화첩을 반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선지훈 왜관수도원 신부는 "두 번이나 불길을 피한 생명력 강한 작품"이라며 뒷얘기를 들려줬다.

名品은 역시 '命品'?

국보급인 이 화첩은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장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1925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수집해간 겸재 그림을 화첩으로 묶은 것이다. 독일로 건너간 화첩은 줄곧 오틸리엔 수도원 박물관 한편에 전시되다가 1980년대 초반, 잠시 수도원을 떠났다. 수도원이 뮌헨의 한 전문가에게 보존처리를 맡겼던 것이다. 선지훈 신부는 "이 전문가는 당시 집과 연구소를 오가며 보존처리 작업을 했는데, 어느 날 집에 큰불이 나서 사망했다"며 "천만다행으로 화첩은 마침 연구소에 있어서 화를 면했다"고 전했다.

겸재 화첩은 지난 2006년 영구임대 형식으로 경북 칠곡군 왜관수도원에 반환됐다. 하지만 이듬해 왜관수도원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면서 하마터면 이 명품을 잃을 뻔했다. 당시 화재로 성당과 수도원 일부가 소실됐지만, 수도원 관계자들은 불길 속을 뚫고 들어가 화첩부터 구해냈다고 한다.

겸재 서거 250주년을 맞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에서 22일까지 열리고 있는 《겸재 정선, 붓으로 펼친 천지조화》전에서 이 귀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거주했던 함흥 궁궐의 소나무를 그린 '함흥본궁송(咸興本宮松)'을 비롯해 21점의 겸재 걸작들이 실려 있다.

왜관수도원 소장 겸재 정선 화첩 중‘금강내산전도(金剛內山全圖)’. 산세와 폭포, 누각 등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왜관수도원 소장 겸재 정선 화첩 중‘금강내산전도(金剛內山全圖)’. 산세와 폭포, 누각 등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명품은 하늘도 돕는다

명품의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일화는 또 있다. 1960년대, 소설가 월탄 박종화(朴鍾和·1901~1981) 선생 집에 불이 났다. 그림 애호가였던 월탄 선생은 '홍지문' '압구정' 등 겸재 그림 3첩을 긴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 두고 감상했다. 불이 난 순간, 액자가 방바닥에 떨어졌지만 때마침 지붕에서 떨어진 기왓장 조각이 그 위를 덮는 바람에 그림은 조금도 불에 타지 않았다고 한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추사가 제자인 역관(譯官) 이상적(李尙�`)에게 그려 보낸 이 그림은 이상적의 제자를 거쳐 한말의 권세가인 민영휘에게 갔다가 경성제대 교수 후지스카(藤塚)에게 넘어갔다. 1944년 후지스카가 귀국하자 서예가이자 서화수집가였던 손재형이 도쿄의 후지스카 집으로 찾아가 100일 동안 문안하며 세한도를 넘겨달라고 간청했다. 감복한 후지스카는 세한도를 돈을 받지 않고 건넸는데, 그 석달 뒤 후지스카 집은 폭격을 맞았다. 후지스카가 소장했던 모든 책과 자료가 불타버렸지만 세한도만 극적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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