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그라모폰(DG) 111주년 기념음반
1898년 독일에서 태어난 미국 발명가 에밀 베를리너(Emil Berliner)는 최초의 원반형 디스크를 만든 뒤 그라모폰(Gramophone)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하노버에 공장을 차렸습니다. 그는 미국 출신의 프로듀서 프레드 가이스버그를 끌어들였고, 밀라노의 한 호텔 방에서 나폴리 태생의 땅딸막한 가수가 딸각거리는 기계에 대고 노래를 부른 것이 1902년입니다. 이 가수는 20세기 초반 전설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였고, 그의 음반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본격적인 클래식 음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DG의 역사는 클래식 음반 산업의 역사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EMI와 데카 등 막강한 라이벌들과 쟁패를 다투던 이 음반사가 절대 강자로 떠오른 것은 지휘자 카라얀(Karajan) 덕분이었습니다. 베를린 필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등을 차례로 거머쥔 이 패기만만한 지휘자는 1959년 DG와 계약을 맺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녹음했습니다. 이후 카라얀은 타계 3개월 전인 1989년 4월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을 빈 필과 녹음할 때까지 30년간 330종의 음반을 함께 작업하면서, DG를 세계 정상에 올려놓는 '1등 공신'이 됩니다. 카라얀은 1978년 당시 14세의 소녀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조피 무터를 발굴했고,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이 음반사를 통해 녹음하면서 데뷔시켰지요. DG를 상징하는 노란색이 클래식 음반을 대표하는 색깔로 떠오른 것도 이 즈음입니다.
수많은 음반사의 합종연횡(合從連橫)과 인수·합병에도 '절대지존'의 위치를 놓치지 않았던 DG 앞에 격랑이 일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입니다. 클래식 음반 시장이 만성적인 포화 상태에 이르고, 기존 음반의 절반 가격에 불과한 저가 음반이 속속 출시되는 한편, 음반에서 온라인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올해 111주년을 맞은 DG가 대표적 명반 55선을 모아 CD 55장짜리 두툼한 자축 생일 선물을 내놓았습니다.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 등 역대 베를린 필의 지휘자부터 베네수엘라의 28세 청년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까지 DG의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수많은 지휘자와 연주자, 성악가의 음반을 담고 있습니다. 관현악과 실내악, 오페라와 가곡을 망라하고 있는 푸짐한 잔칫상을 받아 든 손님들은 이 명가(名家)의 21세기 수성(守城) 전략도 함께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