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철종 13년의 셰익스피어

입력 : 2009.10.22 03:14

앗, 저건 리어왕? 햄릿?… 3시간 반짜리 '숨은 그림 찾기'

때는 1859년(철종 10년). 나무꾼이 왕좌에 올랐듯이 사회의 위아래가 뒤섞이던 시절이다. 강화도 복사나루 객줏집 늙은이(최용진)가 세 딸을 앉혀놓고 "이제 은퇴하기로 했다"며 재산을 분할한다. 간교한 언니들과 달리 막내 거달이(최수현)는 "마음을 짧은 혀로 말하기엔 너무 크다"며 스스로 물러난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어리석음이 부른 그 비극의 출발점과 겹쳐지는 장면이다.

극단 미추의 연극 《철종 13년의 셰익스피어》는 이런 가위질과 모자이크의 총합이다. 셰익스피어 작품 37편을 절묘하게 떼어다 붙이는데 그 수법이 담 넘는 구렁이다. 불구의 몸을 말재주와 꾀로 극복하려 한 리처드 3세는 귀갑이(송태영)로, 왕을 죽인 죄의식으로 잠을 못 이루는 맥베스는 막패두(김현웅)로, 햄릿 때문에 미치는 오필리어는 오필녀(김정원)로 각각 등장한다. 3년이 흘러 철종 13년에 벌어지는 자매 간 암투와 엇갈린 사랑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한여름 밤의 꿈》 등의 친근한 이야기가 줄줄이 엮여 나온다.

《철종 13년의 셰익스피어》에서 객줏집 늙은이(가운데)가 딸들의 애정을 테스트하는 장면.《 리어왕》을 연상시킨다./미추 제공
《철종 13년의 셰익스피어》에서 객줏집 늙은이(가운데)가 딸들의 애정을 테스트하는 장면.《 리어왕》을 연상시킨다./미추 제공
일본 작가 이노우에 히사시의 작품(원제 《텐보 12년의 셰익스피어》)으로 배삼식이 번안했고, 일본 연출가 마쓰모토 유코가 미추 배우들과 작업했다. 치밀한 구성력이 돋보이고 마당놀이 같은 장면 전환과 속도감도 있다. 그러나 3시간30분에 이르는 공연시간은 너무 길었다. 1막은 즐거웠지만 2막은 좀 괴로웠다. 감동을 기대하기보다 위트와 형식미를 봐야 하는 무대였다.

《철종 13년의 셰익스피어》는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이다. 이 연극은 숨은 그림 찾기 같다. 셰익스피어의 인물과 대사, 명장면을 발견하는 재미다. 거달이의 두 언니 간월이(서이숙)와 이간이(황연희)의 한판 대결, 되풀이되는 "그것이 문제다" 릴레이, 쌍둥이를 통한 오해의 희극성이 재미있다. 그러나 이간이의 성격이 설득력 있는 계기 없이 180도 달라지는 점 등 몇몇 장면은 억지스러웠다. 지난해 초연해 호평받고 올해는 30분 더 길어진 연희단거리패의 5시간짜리 문제작 《원전유서(原典遺書)》(연출 이윤택·24~26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와 비교해볼 만하다. 비극의 덩치를 경험하고 싶다면 《원전유서》를, 희극적 형식미를 즐기고 싶다면 《철종 13년의 셰익스피어》를 추천한다.

▶23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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