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chosun.com] "미술시간이 제일 즐거워" 달동네서 미술교육 하는 서울대생들

입력 : 2009.10.05 22:23   |   수정 : 2009.10.06 10:17
서울 관악구 난곡동에 위치한 1층 반지하주택. 101호 파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 벽에 붙어있는 아홉살 찬아의 그림이 보인다. 크레파스로 알록달록 그려나간 그림에는 즐거운 표정으로 팔팔열차를 타는 사람들, 긴 장대를 들고 밤을 따는 사람들, 오순도순 모여앉아 피자를 먹고 있는 가족들이 담겨있다. 그림 설명을 부탁하자 얼른 할머니 뒤로 숨어버리는 찬아는 동네에서 말이 없기로 유명한 아이다.

“갑자기 제 애미가 없어졌으니 어린 것이 오죽했겠수. 집에 와서도 살갑게 떠들지를 안했어요. 내가 얼마나 마음이 쓰였게.그런데 미술수업을 받고 부터는 ‘할머니, 나 오늘 칭찬받았다. 선생님이 그림은 내가 제일 잘 그린데’ 이렇게 자랑을 다 하잖아요.”

 
찬아의 할머니 김수열(67)씨는 달라진 손주의 모습이 그저 신통하기만 하다. 지난해 6월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로 늘 의기소침해 있던 찬아는 3개월전부터 서울대 형 누나들과 함께 미술수업을 시작했다. 2년간 찬아를 돌봐온 아동복지 센터장 염해자(39)씨는 “찬아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며 “특히 미술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관악구 난곡동 일대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이 미술 수업은 서울대 경제동아리 ‘싸이프’(SIFE)가 미술동아리 미동(美動)과 ‘참 좋은 아동센터’ 를 연계하면서 시작됐다. ‘싸이프’란 자유기업학생들(students in free enterprise)의 약자다. 전세계 48개국 2000개 대학의 학생들이 지역사회의 경제적 문제에 도전하고 사회구성원들의 경제적 기회를 증진시키는 활동을 하는 국제 비영리 단체다.

서울대 싸이프 이인준(26) 회장은 “여러 교육 분야중에서도 특히 예술교육에 존재하는 빈부격차가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술교육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G마켓에서 주최한 ‘재능나눔 공모전’에 당선돼 활동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덕택에 색종이 값마저 부담이 되는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질높은 미술교육을 제공할 수 있었다.

매주 금요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진행하는 미술수업은 아이들에게 단연 최고의 시간이다. 아동센터 교사 곽지연(26)씨는 “금요일만 되면 아이들이 눈에 띄게 들뜬다” 며 “유난히 장난기가 심한 아이들도 미술수업 시간만큼은 진지해 진다”고 전했다. 학부모들이 방과후 교육까지 빼가며 금요일 시간을 맞췄다.

싸이프는 지난달 19일 아이들의 작품을 모아 서울대 문화관 앞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그림을 관람하러 온 20여명의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그림이 어디에 걸려있나 찾기 시작했다. 다니(9)가 자신의 그림 ‘아기곰’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동안 진서(8)는 ‘내 그림만 없다’며 입을 샐죽 거렸다. 전시회를 지켜본 한 사범대 대학원생은 “아이들의 화풍이 정형화된 일반 미술학원의 그림과는 다른 느낌”이라며 “훨씬 더 창의적이고 아름다워 보인다” 고 말했다.

서울대 싸이프는 이번 달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싸이프 월드컵에 우리나라 대표로 출전한다. 경인지역의 영세 염전을 살리고 우리 바다의 천일염을 개발해 소비자에게 공급하겠다는 ‘천일염 프로젝트’가 국내 심사에서 호평을 받은 것이다. 저소득층을 단순히 도와주는 차원에서 벗어나 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겠다는 싸이프의 활동에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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