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줄리엣

입력 : 2009.10.05 03:46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현대무용·모던발레 각각 공연

이런 로미오, 이런 줄리엣도 있다. 5일 개막하는 제12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에 가면 셰익스피어 비극을 전혀 다른 스타일로 표현한 두 해외초청작을 감상할 수 있다. 슬로베니아에서 온 현대무용 《라디오와 줄리엣》, 이탈리아 모던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마리보르 발레단의 《라디오와 줄리엣》은 영국 록 그룹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아테르발레토 무용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프로코피예프 음악을 쓴다. 빈 무대에서 춤만으로 승부할지, 아니면 화려한 비주얼(볼거리)과 상징의 힘을 동원할지. 화법이 다른 두 작품의 관람 포인트다.

서정성이 강한 현대무용《라디오와 줄리엣》(오른쪽)과 격렬한 모던발레《로미오와
줄리엣》. /서울세계무용축제 제공
서정성이 강한 현대무용《라디오와 줄리엣》(오른쪽)과 격렬한 모던발레《로미오와 줄리엣》. /서울세계무용축제 제공
줄리엣이 추억하는 로미오

《라디오와 줄리엣》은 흑백 영상으로 남녀와 그들의 추억을 클로즈업한다. 차가운 벽을 쓰다듬는 여인의 손길. 어느 순간 영상과 실물이 겹쳐지고 무대엔 여자 무용수(줄리엣) 한 명이 서 있다. 몸짓은 느리고 몽롱하다. 뚝뚝 끊어지는 동작, 관절을 비트는 방식에 슬픔이 묻어난다.

어두운 무대에 세트라곤 없다. 한 명씩 남자 무용수(로미오)들이 들어오더니 모두 5명이 군무(群舞)를 춘다. 춤은 크고 격렬하다. 그들이 메트로놈처럼 좌우로 기우뚱거릴 때 등장하는 줄리엣. 서로 몸을 비비는데 처연하다.

마지막 장면, 로미오가 줄리엣을 안고 나타난다. 암전(暗轉) 뒤엔 죽은 로미오 앞에서 줄리엣이 괴로워한다. 중얼거림으로 반복되는 라디오헤드의 멜로디에 외로움과 절망이 극대화된다.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로미오·줄리엣만 10쌍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막을 여는 건 남자, 로미오다. 등 뒤로 손이 묶인 채 몸을 뒤튼다. 옆에는 남녀 3쌍이 시체처럼 누워 있다가 조금씩 움직인다. 거칠고 고통스러운 춤이 이어진다.

지름 3m의 환풍기에서 춤추는 장면이 강렬하다. 그 유명한 발코니 장면의 변형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환풍기 안으로 올라서면 시계방향으로 돌던 프로펠러가 멈춘다. 로미오의 몸에 올라탄 줄리엣의 몸은 반시계방향으로 움직인다. 둘의 사랑에 내재된 파괴적인 힘, 역행(逆行)이다.

무용수들은 한쪽 발에 헬멧을 매달고 있다. 안무가 마우로 비곤제티는 "육체는 덮을 수 있지만 마음을 보호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말했다. LED 스크린으로 구현한 폭포 위에서 남녀가 X자 형태로 배를 포개는 엔딩, 10쌍의 로미오·줄리엣이 춤추는 장면의 잔상이 길다. 축제 폐막작이다. 23~24일 경기도 고양아람누리.

▶축제 프로그램은 www.sidance.org  참조. (02)3216-1185

서울세계무용축제2009 /박돈규 기자 coeu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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