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로맨틱 코미디에 포개놓은 천체 우주쇼

입력 : 2009.09.29 06:09

오페라 '사랑의 묘약'

오케스트라가 조율을 시작하면 곧바로 막이 열리고 불빛 하나가 무대 뒤편 멀리서 비쳐온다. 은하계의 모습이 그 불빛에 투영되면, 2~3분간 무대는 고요한 적막에 빠져든다. 2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막이 오른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도입부였다.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이자 연출을 맡아 '감독 겸 선수'로 나선 이소영은 이렇듯 로맨틱 코미디에 천체 우주 쇼를 과감하게 포개놓았다.

여느 시골 마을에서 일어날 법한 장밋빛 사랑 이야기를 우주 공간으로 옮기면서, 이소영 감독은 1막 초반 내내 건조하고 어두침침한 조명을 유지했다. 유쾌하면서도 서정적인 낭만주의 오페라의 강점을 자칫 내던질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하지만 탱크와 볼링공 같은 세심한 디테일과 그림자극을 활용한 설정으로 유머의 농도를 한껏 높였다. 반면 이미 유럽 극장에서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는 셀프 카메라 장면은 시선이나 집중력을 분산시킨다는 점에서 오히려 과유불급(過猶不及)이었다.

오페라《사랑의 묘약》에서 네모리노 역을 맡은 테너 정호윤(앞줄 가운데)과 아디나 역의 소프라노 임선혜(왼쪽). 시종일관 객석에 웃음을 불어넣은 둘카마라 역의 베이스 심인성(오른쪽)까지 이들‘스타 캐스팅’의 파괴력은 컸다./국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사랑의 묘약》에서 네모리노 역을 맡은 테너 정호윤(앞줄 가운데)과 아디나 역의 소프라노 임선혜(왼쪽). 시종일관 객석에 웃음을 불어넣은 둘카마라 역의 베이스 심인성(오른쪽)까지 이들‘스타 캐스팅’의 파괴력은 컸다./국립오페라단 제공

이날 무대는 적재적소 캐스팅의 승리이기도 했다. 네모리노의 사랑을 알면서도 능청을 떠는 내숭덩어리 아디나 역의 소프라노 임선혜는 귀여운 애교와 우아한 기품을 겸비하며, 바로크 음악뿐 아니라 낭만주의 오페라에서도 한껏 매력을 발산했다. 네모리노 역의 테너 정호윤은 초반 목소리가 충분히 풀리지 않아 다소 불안했지만, 짝사랑에 빠진 바보 총각보다 고뇌에 빠진 낭만적 청년상에 비중을 실으며 현실감을 부여했다. 사랑의 기쁨에 북받쳐 우는 명(名)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끝났을 때 가장 큰 박수가 쏟아진 것도 정호윤이었다.

그동안 정통 오페라에서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던 바리톤 강형규는 리모컨으로 탱크 문을 걸어 잠그는 코믹 연기로 유쾌함을 더했고 돌팔이 약장수 둘카마라 역의 베이스 심인성은 청중의 박수에 답하는 커튼콜까지도 성실함을 보였다. 오보에와 플루트로 이어지는 팀프(TIMF) 앙상블의 목관 라인에는 윤기가 넘쳤지만, 첫 공연인 탓인지 무대 위의 합창과 무대 밑의 오케스트라 사이에 음악적 라인이 종종 끊겼다. '우주선'이나 '외계인' 같은 자막 번역은 다소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했다. 공연은 30일까지. (02)586-5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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