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신비로운 브람스는 내 연인"

입력 : 2009.09.24 03:11

협주곡 앨범 내는 사라 장, 11월부터 공연 갖는 장한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의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후, 브람스는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반드시 한 번쯤 물어야 할 상징이자 기호가 됐다. 올가을 브람스가 음반으로, 이어서 공연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사라 장·스테판 재키브(바이올린)와 장한나(첼로)에게 브람스와 사랑에 빠진 이유를 물었다.

◆ 드라마틱함과 엄청난 에너지가날 힘들게 해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거장 쿠르트 마주어의 지휘로 녹음한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워너뮤직 코리아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은 데뷔 음반 이후 18년간 18장의 음반을 쏟아냈지만, 의외의 '빈칸'도 있었다. 브람스와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그런 사라 장이 최근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하는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이 두 곡을 녹음(EMI)하며 오랜 과제를 해결했다. 숨 가쁜 연주 일정으로 두 달째 세계를 유랑 중인 그녀를 영국 런던에서 만나 유독 이 작품들의 녹음이 늦어진 이유를 물었다.

사라 장은 8살 때 미국 줄리아드 예비학교에서 브람스의 협주곡을 공부했다. 하지만 20세 때까지 단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다. 테크닉만 좋다고 해서 연주할 수 있는 곡이 아니란 걸 어린 나이에 알아차린 것이다.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건, 당시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이자 사라 장의 음악적 대부였던 마주어였다.

"열여덟 살 때부터 브람스를 연주하고 싶다고 계속 졸랐어요. 그때마다 마에스트로는 '넌 아직 어리다'라며 거절하셨죠. 2년 뒤 마침내 브람스를 연주해도 좋다고 허락했을 때 하나의 조건이 있었어요. 예전에 배운 브람스는 완전히 잊어버리라는 거였죠."

마주어는 사라 장의 브람스를 "처참하리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뜯어고쳤다"고 한다. 유머 넘치고 친절하면서도 음악 앞에서는 엄격한 마주어는 브람스 앞에서는 더욱 까다로웠다. 마주어와 협연한 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녀가 즐겨 연주하는 레퍼토리가 됐다.

지금도 여전히 브람스는 그녀에게 도전의 대상이다. "브람스가 가진 드라마틱함과 열정이 때로는 저를 힘들게 해요.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아무렇게나 분출하면 곧장 엉망이 되고 말거든요. 그 엄청난 감정과 에너지를 연주하는 내내 지적으로 컨트롤해야 하죠."

그녀와 브람스의 만남은 협주곡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는 12월 내한 리사이틀에도 브람스의 소나타가 포함되어 있다. "그의 모든 작품을 좋아해요. 바이올린 작품뿐 아니라, 교향곡·실내악 등 모든 작품이 들어야 할 각각의 이유를 지니고 있어요."

▶사라 장 바이올린 리사이틀, 12월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02)541-6235

◆ 브람스 교향곡은 들어도 지치지 않는 진액만 담겨 있어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로 리사이틀을 갖는 첼리스트 장한나./PMG 코리아 제공

첼리스트 장한나는 자신의 삶을 바꾼 한 시간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스승인 명(名)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의 만남을 든다. 열 살의 꼬마 첼리스트 장한나는 첫 수업부터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를 당당하게 들고 갔다. 하지만 마이스키와 공부하면서 "그냥 단순히 악보만 보고 연주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곡가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걸, 그 수업에서 처음으로 느낀 거죠."

거침없는 낭만주의의 파고(波高)에도 고전주의의 품격을 지키려고 했던 브람스를 두고 흔히 '복고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인다. 장한나는 "브람스는 낭만적 영혼을 지니고 있었으면서도 하이든과 베토벤의 고전 형식을 완성하려고 애썼기 때문에 '뒤로 가는 작곡가'라고도 한다. 하지만 애써 기존 형식을 부수지 않고도 얼마든지 하고픈 말을 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자부심과 고집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 브람스는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젊을 적 사진을 보면 너무나 수려한 '꽃미남'이에요. 하지만 어느새 나이를 먹고 거구(巨軀)가 되어가면서 그 모습이 절반쯤 감춰진 거죠. 쉽게 상처받았던, 민감하고 예민한 영혼이라는 걸 곡에서도 느낄 수 있어요."

본격적인 지휘 겸업에 나선 요즘, 장한나는 머리를 싸매고 다시 브람스의 교향곡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아무리 실내악이나 첼로 소나타를 공부해도 막혀 있던 의문들이 교향곡을 통해 조금씩 풀려나간다. 특히 그의 교향곡은 들어도 들어도 지치지 않는 진액만 담겨 있다"고 말했다. 푸르트벵글러와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브람스 교향곡 음반들은 '초보 지휘자' 장한나에게 참고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는 11월부터 열리는 리사이틀에서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를 들려주는 장한나는 "힘들 때마다 그의 정신적 스승 역할을 해주었던 슈만 부부에게 어떤 조언을 구했는지 묻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장한나 첼로 리사이틀, 11월21일·12월 5일 서울 예술의전당, (02)74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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