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그 찬란한 기억] 힘찬 발걸음… '동쪽 수호신' 나가신다

입력 : 2009.09.21 03:03

박물관 100년 특별전 대표유물 [15]강서대묘 청룡도
세련되고 화려한 묘사고구려 미술의 걸작…
무덤 벽 훼손되고 퇴색일제시대 모사본 만들어

고구려 무덤 벽화는 3세기 말에서 7세기 중엽까지 제작되었으며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만주 지안(集安)과 평양 일대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현재까지 100여기(基)가 알려져 있고, 그 중 33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문화적 가치를 널리 인정받고 있다. 벽화의 주제는 생활풍속, 장식무늬, 사신도(四神圖) 등이 있다.

이 중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를 뜻하는 사신(四神)은 동서남북의 네 방위와 사계절, 하늘 사방의 28별자리와 관련된 상상 속의 동물이다. 초기에는 해와 달, 별자리, 신령스러운 동물, 연꽃 등과 함께 하늘세계를 이루는 요소로 벽화에 등장하다가, 6세기 이후에는 방위신(方位神)과 무덤 주인의 수호신으로 무덤 벽면에 단독으로 표현되었다. 강서대묘(江西大墓)의 사신도가 대표적이다.

강서대묘 널방 동쪽벽의 청룡 도 .두 개의 뿔이 달
린 청룡이 혀를 길게 내밀고 눈을 부릅뜬 채 동쪽을 지키고 있다. 화려하면서도 유연
하고, 힘찬 기상이 느껴지는 고구려 무덤 벽화의 걸작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모사도로 1930년 경에 만들어졌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강서대묘 널방 동쪽벽의 청룡 도 .두 개의 뿔이 달 린 청룡이 혀를 길게 내밀고 눈을 부릅뜬 채 동쪽을 지키고 있다. 화려하면서도 유연 하고, 힘찬 기상이 느껴지는 고구려 무덤 벽화의 걸작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모사도로 1930년 경에 만들어졌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강서대묘는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三墓里)에 있는 흙무지돌방무덤이다. 화강암을 이용해 널길과 널방을 만들고 석회와 진흙을 번갈아 다져 봉분을 쌓았다. 이 무덤은 1900년대 초반부터 벽화 무덤이라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는데, 1912년 조선총독부로부터 고적조사를 촉탁(囑託)받은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본격적으로 조사에 들어갔다.

세키노는 벽화 모사(模寫)를 기획하였다. 이때 이루어진 모사 작업은 벽면에 흙물이 흘러내려 생겨난 자국까지 그려내는 등 벽화의 발견 당시 모습을 사실적으로 옮기는 데에 충실했다. 강서대묘 사신도는 많은 부분이 퇴색되고 훼손되고 있어 이 모사도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강서대묘는 널방 네 벽면에 사신, 천장석에 황룡(黃龍)을 그려 넣었다. 동벽과 서벽의 청룡과 백호는 남쪽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고, 북벽에는 뱀이 거북이를 감은 형상으로 서로 마주 보는 모습의 현무가 표현되어 있다. 남벽에는 암수 주작이 입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동벽의 청룡도는 왼쪽 앞발을 크게 내달으며 하강하는 모습으로 아무런 배경 없이 그려져 있다. 어깻죽지에서는 날개 털이 불꽃 형상으로 뒤로 뻗어나갔으며 네 다리 뒤로는 가는 털들이 뭉치를 이루며 휘날리고 있다. S자를 이룬 목과 굵은 몸통, 유연한 꼬리, 기운차게 내닫는 네 다리가 어우러져 청룡의 자연스럽고 힘찬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초기 고구려 무덤벽화에서 청룡은 여러 동물의 형상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어색하게 연결된 모습으로 그려졌으나, 벽화 안에서 비중이 높아지면서 몸체 각 부분의 조화가 유기적이고 자연스러워져 상상적 동물 특유의 신비적 사실성을 갖추게 됐다. 강서대묘의 청룡도는 세련된 묘사와 화려한 색상, 힘찬 움직임 등을 통해 고구려의 높은 회화 수준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강서대묘 모사도이다. 이는 1912년 첫 모사 이후 조선총독부가 강서무덤 벽화 재모사를 계획했던 1930년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맨 위로